“누구도 방관자일 순 없다”

이번 서울 상영 이전 어느 시사회에서 감독은 관객들에게 “두 시간 동안 고문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다. 검열영화제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감상문에는 그 글을 쓰기 위해 열흘 이상을 고민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이나 글을 지우다가 종국에는 키보드 위에 머리를 내리고 울고 싶었다.

<밥꽃양>은 그런 영상기록물이다. 영상으로 기록된 현실과 지금 <밥꽃양>을 둘러싼 현실이 첩첩이 쌓이고 얽혀 지극히 무겁게 관련자들의 머리를 내리 누르고 있다. 그리고 숱한 논쟁점을 안고 있는 이 영상물에서, 관련자가 아닌 자는 없다.

그러나 혹은 그러하기에 나는 다소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려고 한다. 상영 자체가 감당키 힘든 노동이라는 감독의 말울림과 파업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당혹스런 숨소리를 잠시 밀쳐두고, 심지어 “남편은 포기할 수 있어도 내 현실은, 내 밥줄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 아주머니의 울부짖음에 대해서도 깊이 말하지 않고, 나는 지금 내게 가장 다가왔던 어떤 맥락 하나만을 이야기하려 한다. <밥꽃양>에 매달린 숱한 현실적인 억압의 실체들은 다른 이들의 입에서 좀더 자세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그저 순진한 양 말하려 한다. 양해해 주길.

<밥꽃양>을 보고 온 나에게 동생은 어떠했냐고 물었다. 나는 답했다- ‘무서웠다’고. 소름끼치게 무서웠다고. 내게 <밥꽃양>은 목소리/침묵 간의 괴롭고 때론 자기분열적인 전투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밥꽃양> 속에는 제도언론의 힘있는 목소리 아래 누락된 말들이 있다. 그리고 집회단상 위 마이크를 쥔 노조집행부의 목소리에 가리워진 현장노동자들의 괴로운 내뱉음과 갈등의 파열음이 있다. 그리고, 끝내 정리해고를 수용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여성이기에 쉽게 내버려진 아주머니 144명의 울부짖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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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들의 복직을 약속하지 않는 노조집행부 앞에서 절규하는 아주머니들의 외침이 있다. <밥꽃양>이 세심히 주워담은 말의 파편에는,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의 말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어느 아내의 취기 도는 중얼거림까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들을 말하게 하려는 <밥꽃양> 자체를 침묵케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목소리를 둘러싼 싸움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권력관계란 없다. 어느 순간 A는 목소리를 빼앗긴 자이고, 또 다른 순간 A는 목소리를 빼앗는 자이다. 그리하여 나는 <밥꽃양>을 보는 내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내가 나이 어린 여성이고 그래서 목소리를 빼앗기는 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건 역으로 나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보루였다. 허나 어느 순간에서는 내가 목소리를 빼앗는 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순간 적을 닮아버린

노조집행부의 모습은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노조를 상대로 농성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향해 “당신들 뒤에 배후세력이 있다고 생각해!”라고 소리치는 어느 노조집행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이없어 웃어버렸지만, 그들이 맞서 싸웠던 회사측의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모습은 차라리 공포스러웠다고 해야겠다.

그렇다. 그 투쟁 속 절박한 생존을 걸고 싸운 이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밥꽃양>을 보며 가장 깊이 느낀 것은 나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어떤 절망감이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복직요구에 통곡했던 아주머니들의 울음에 묻어있던 것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조심스레 추측한다. 그 현실을 몸으로 겪었던 자들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나는 이 공포와 절망감을 쉽게 희망으로 치환시키고 싶지는 않다. 얽히고 설켜 있는, 때론 자신이 자신을 무는 먹이사슬 같은 권력관계의 그 맥락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저 인정하려 한다.

어느 순간 적을 닮아버린 노조집행부의 모습에 비추이는 것은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 <밥꽃양>과 관련하여 누구도 방관자일 수 없다. 이 영상물은 우리 모두에게 칼처럼 거울을 내미는 이야기다, 라고.

홍문 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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