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

불구로 태어난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 상상만 할 뿐이지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 당사자보다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프지 않을까, 정도만 가늠할 뿐이다.

앙리 드 클루즈 로트렉은 꼽추 화가로 유명하다. 사촌지간인 부모의 근친혼으로 평생 골격 유착의 괴로움을 겪었다. 로제 플라송의 1999년 작 <로트렉 Lautrec>(18세, 크림)은 프랑스 화가 로트렉의 그림 인생을 부모와 밑바닥 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려한 전기 영화다.

손이 귀한 귀족 집안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로트렉이 골격 유착이라는 진단을 받자, 어머니(아네모네)는 이렇게 탄식한다. “왜 아들에게 그런 고통이.” 어머니는 이때부터 남편을 멀리하고, 바람 피우는 것도 받아들인다. 성장한 로트렉(레지 로이에)은 사촌을 첫사랑으로 하여 세탁부, 무희, 창녀 등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멀어진다. 어머니는 신부에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앙리는 내 곁을 떠나 죽으려고만 한다. 고통은 평등한 것인가, 신은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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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태어나자 빗 속에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올렸던 아버지(끌로드 리치)는 어머니의 맹목적인 동정과 이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지켜본다. 끝없이 자신을 학대하던 로트렉이 화실에 불을 지르자, 로트렉을 정신 병원에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는 그렇게라도 해서 아들을 자신 곁으로 돌아오게 하고자 하나 아버지는 아들의 자유를 박탈하지 않으려한다. 창녀에게 가보로 내려온 반지를 주며 “우리 가문은 끝”이라고 하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사하라, 동양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호기를 부린다. 파리로 가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해보라고 권한 것도 아버지이며, 아들에 대한 악평도, 동성애자들과의 어울림도 아버지는 대담하게 받아들인다. 로트렉이 죽자 아버지는 관을 끌어안고 이렇게 절규한다. “프랑스 왕같고 나만의 왕같은 존재”

어머니와 아버지, 누구의 방식이 옳은가, 혹은 누구의 사랑이 더 깊은가를 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에 분명하다. 화가로서의 로트렉은 어머니의 자애로움에 영감과 부자유를 동시에 느꼈고, 아버지의 객관적 태도로부터는 현실 적응의 한 길을 보았던 것으로 영화는 설명한다. 그러나 범인이 천재나 예술가의 내면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로트렉> 역시 <플록>이나 <뷰티플 마인드>처럼 상식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옥선희/ 비디오·DVD 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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