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들의 퇴직권유 또는 종용이 본인과 주위에서 계속 반복될 경우 더 이상 저항하여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으므로… 사직의 의사가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부당 해고다.”

알리안츠제일생명 사내부부 해고자들 2심 승소

농협등 성차별 해고 노동자들 소송에 힘 실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박국수)가 지난 달 26일 이선희씨 등 알리안츠제일생명보험에서 근무했던 여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은 ‘사내부부 여성해고’의 부당성을 우리 법원이 최초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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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사내부부 여성직원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한 알리안츠제일생명보험 해고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한국여성민우회 실무자들. <사진·민원기 기자>

‘근로관계의 특수성 인정’ 환영

1998년 8월 당시 알리안츠제일생명보험에선 사내부부 88쌍의 한쪽 배우자가 모두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이들 중 86명이 여성이었다.

“처음에 회사에서 고참 여직원들을 추려서 장거리 발령을 냈어요. 그렇지만 여직원들은 근처에 하숙을 하는 식으로 모두 버텼죠. 그 와중에 소문이 무성했는데 회사에서 어떻게든 여직원들을 나가게 만든다는 것이에요. 첫번째가 고참 여직원, 두번째가 부부사원 아내직원, 다음은 기혼 여직원, 다음은 아이가 많이 딸린 여직원… 회사에선 아내직원들을 나가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죠. 남편을 데려다가 ‘아내를 내보내라’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본인(아내직원)에게 강요하면 수긍하지 않고 끝끝내 버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남편이라는 ‘인질’이 잡혀있는 상태에선 누구도 모험을 할 수 없었던 거죠.” (원고 증언 중에서)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들의 퇴사가 ‘강요’에 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할 마음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라 판단해서 자필로 사직서를 썼으면 강요에 의한 해고라 볼 수 없다”며 패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노무사 정형옥씨는 “상사가 약자 위치의 사람에게 말로 압력을 넣는 것도 근로자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는데 법원은 단순히 사직서를 썼느냐 안 썼느냐의 행위만을 기준으로 강요냐 아니냐를 판단해왔다”며 1심을 뒤집은 이번 판결에 대해 “근로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고 평한다.

“솔직히 회사에서 상고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1심 때라고 판사들이 정황을 몰랐을까요? 상식적으로 우리가 ‘강요’에 의해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죠. 논리를 따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2심 결과는 그나마 아직도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 판결을 내린 거겠죠. 대법원에 가면 또 판사님들이 어떤 눈을 가지고 이 사건을 바라볼 지 모르지만…” (박보선씨)

법원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의 문제

해고된 지 4년만에 재판에서 승소한 이들 여성 4명도, 현재 2심 계류중인 지방의 해고자 7명도, 그리고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농협 사내부부 해고자들도 어쩐지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다. 박보선씨의 말대로 “우리 법원이 옳고 그름을 판정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농협 재판할 때도 가보았어요. 농협의 경우는 우리보다 더 명확한 사건이라고 봐요. 우린 구두 상으로만 압력을 넣은 거지만 농협의 경우는 퇴직하지 않으면 순환명령 휴직을 내리겠다는 증빙서류까지 있으니까요. 순환명령 들어가서 1년 안에 발령 안 나면 면직 처리되는 거거든요. 그것 자체가 압력이고 강요죠. 당시에 저런 건이 어떻게 패소할 수가 있나 답답했어요. 법은 상식적인 것과 차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됐죠.” (명영선씨)

농협 사내부부 해고자 김향아씨는 2심 재판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무식하니까 용감하다고… 사실 당시엔 ‘억울한 일 당했으니 법치국가니까 법원에서 보호해주겠지’란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만 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법도 없는 국가’에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 많이 하게 돼요. 재판 과정에서 가진 것이 없어서 로비 못 하고 공부 많이 못해서 힘없는 게 죄지만, 다른 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소송 진행중인 사내부부 여성해고자들,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와 여성단체들, 소송하지는 않았지만 성차별 해고를 당한 수많은 여성들, 그리고 언제든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정리대상 0순위에 오르게 될지 모르는 여성노동자들이 모두 이번 판결에 희망을 걸고 있다.

“통계적으로 보나 정황으로 보나 이건 명백한 성차별 해고입니다. 법원이 지금까지 판단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새롭게 정의내려 주길 바랍니다.” (김향아씨·농협 소송 2심 진행중)

“사회적으로 부부사원 여성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 이번 판결의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퇴직하지 않았을’ 여성들입니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는 사회적인 토대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서민자 민우회 노동센터 간사)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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