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사람이 자유로울 때까지그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어

조순경/ 이화여대 여성학 교수

인권학술대회 첫날 조순경(이화여대 여성학) 교수는 ‘차이의 신화와 차별의 현실’이라는 기조 발제를 통해 ‘차이’가 존중되지 못하고 ‘차별’로 이어지는 맥락을 고찰하고 여기에 깊이 개입해있는 위계와 권력을 해체하기 위한 방안을 제언했다. 조순경 교수와 인권재단의 동의를 얻어 기조 발제문을 정리·요약해 싣는다. <편집자 주>

‘차이를 인정한 평등’이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차별은 인간들 사이의 다름을 서열화하고, 위계화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스키와 청국장을 좋아하는 A씨는 그가 스키와 청국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가족과 직장 동료들이 알까 두려워 숨겨가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그는 그러한 자신을 혐오스러워하고,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부인하며 살아간다. 우리 사회가 A씨가 스키를 즐긴다 하여 정신병자라 하지 않으며, 청국장을 즐겨먹는다 하여 변태 식욕자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찍고, 모든 영역에서 그들을 배제하는 이유는 그들의 성적성향이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거스르며, 산을 흉하게 파헤쳐 만들고 여름에 인공설을 뿌린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는 행위는 혐오스러워하지 않는다. 여름에 스키를 탔다는 사실로 우리는 그를 정신병자라 부르지 않는다.

구체적 개인들 또는 집단들 사이의 차이들이 차별로 전환되는 것은 그 차이가 위계를 띠게 될 경우이다. 이때 권력을 가진 집단이 위계의 기준을 정하게 되며, 그 기준은 그들의 관점에서 정해진다. 비장애인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능력’의 판단 기준이 비장애인, 남성적 속성을 띤 능력 요소로 구성되는 것은 그 한 예이다.

소수자 중 소수자의 시선으로

차별 해소는 곧 차이의 위계화를 해체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소수자의 시선이다. 그들이 그 어느 집단보다 차별의 문제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에서, 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차별 받는 집단의 관점에서 차별을 정의하고, 정책을 마련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건널목 신호등 시간이 비장애인의 ‘속도’에 맞추어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속도가 장애인에게 차별이라는 사실을 비장애인은 알기 어렵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수정을 위한 효율적 방법을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로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조차 않는 현실에서 그들에 대한 차별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홍석천씨와 같은 동성애자를 우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가 우리 사회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석천씨가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그대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프로그램 진행과 성적 지향이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어린이들이 아는 것이 더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 수정 조치와 관점들은 성적소수자의 시선으로 문제를 볼 때 가능하다.

홍석천씨가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그대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어린이들이

아는 것이 더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차별의 의미

현재 유엔을 비롯하여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불란서, 덴마크, 스웨덴 등 서구 각국에서의 금지하는 차별은 이러한 직접차별과 간접차별, 그리고 폭력(harassment)를 의미한다. 직접 차별이 합리적 이유 없이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이유로 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불이익한 대우(disparate treatment)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간접 차별은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러한 중립적 기준이 특정 소수자 집단에게 불이익한 결과(disparate impact)를 야기하는 경우를 차별로 보는 개념이다. 민주노총이 남북노동자교류를 축구대회를 통해서 한다고 하고, 노동자 축구대표팀을 구성했을 때 100% 남자로 구성되었다면, 특별히 남성 비장애인으로만 축구단을 구성한다 하지 않았을지라도, 축구라는 종목의 선정 자체는 여성과 장애인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불평등한 영향을 야기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차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으로 성이나 인종, 연령, 성적 성향을 매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 의도성이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준의 적용으로 인해 집단들 사이에 매우 불균등한 결과가 나타났다면, 통계적인 불균형 자체만으로도 차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차별 판단 기준은 ‘과거차별의 현재효과(present effects of the past discrimination)’를 전제하고 있다. 즉 표면상 아무리 중립적인 원칙이나 기준 -예를 들어 성역할 고정관념, 가부장적 문화와 관습 등- 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거 차별의 누적으로 인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러한 기준이나 원칙은 차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의 수정을 위하여

차별은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기초한다. 그러나 편견과 고정관념 자체는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편견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법적 규제의 범주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수정하는 교육은 차별 예방 차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차별 수정 조치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모든 사회조직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차별이 발생했을 때 그 차별에 대한 처벌을 강하게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과 법적 강제의 연계를 통해 차별 수정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외국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차별발생 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집단 소송제(class action)를 통해 엄청난 액수의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 미국의 기업과 학교 등 정부의 지원을 받는 각 조직들이 다양성 교육(diversity training)과 상세한 차별 예방 지침을 자율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여기서 편견을 수정하는 인권교육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교육자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지식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학계, 언론계, 법조계에서 ‘일류대’ 출신의 남성들이 거의 독과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서울대에서 차별 및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다루어야 할 전공 분야인 법학, 철학, 경제학, 정치학, 경영학, 행정학과의 교수진 147명 모두가 100% 남성, 비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자 집단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나오기 어려우며, 차별에 대해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편견의 제거와 차별의 해소는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확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외국의 어느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단체의 주장처럼, “마지막 한 사람이 자유로울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