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소설처럼 공적으로 드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중문화는 아니지만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즐기는, 물밑에서 유행하는 하나의 하위문화가 된 지 오래다. 매니아가 있는 특별한 만화장르라고나 할까. 물론 야오이는 만화도 있고 소설도 있지만 야오이를 보는 사람들은 보통 가볍게 즐기기 위함, 즉 시각적 쾌락을 목적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야오이 향유 계층의 상당수가 10대나 20대의 젊은 여성들인데, 야오이는 그 진부한 소재에서 벗어나 여성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분명 가치가 있다.

야오이는 기존의 만화에서 그려졌던, ‘순정파’와 ‘요부’라는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에 불편해 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야오이가 그렇게 환영받을 만한 문화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야오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말한다. “야오이는 그저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들은 야오이가 판타지란 것을 알면서 즐긴다”라고.

맞는 말이다. 야오이는 판타지다. 이 점이 야오이에 대한 비판을 효과적으로 무마시킬 때가 많은데 나는 판타지라고 해서 비판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오이의 기본 코드는 강간이다. 소위 남자역할을 하는 공(功)이 여자역할을 하는 수(收)를 강간한다. 수는 처음엔 강간을 한 공을 미워하지만 결국은 공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야오이의 줄거리다.

여성들이 강간의 장면에서 강간을 당하는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에 거기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쾌락을 느끼는 것이라고 하지만, 강간이란 것은 그것 자체로 여성의 경험적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또한 공과 수는 같은 남성이지만 각각의 모습은 기존의 성차별적인 여·남 구조와 매우 닮았고 야오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성애를 투영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야오이에서의 강간은 당하는 사람의 성이 ‘남성’이라는 유리벽만 있을 뿐이지 여성들에게도 편하지만은 않은 코드다.

또 하나 야오이의 긍정적인 점을 드는 것이 “야오이는 동성애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다. 일단 야오이는 남자인 동성간의 섹스를 다루는 이야기지 동성애자인 게이의 현실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력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야오이의 연장선상에서 동성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환상에 기인한 것인 만큼 비록 호의적이라고 해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이해이기까지 하다.

만약에 야오이를 즐기는 사람의 ‘수’와 ‘동성애자 인권’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면 동성애자의 현실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야오이를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는 야오이는 좋지만 동성애자는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야오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애자의 자기기만 아닐까.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이다.

야오이는 예술인지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단지

즐기기 위한 쾌락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환상 이면의 현실을 지적할 수는 있는 것이고 유독 야오이만 가치중립적일 순 없다고 말하고 싶다. 야오이도 한계가 있다.

유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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