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주부들 정말 대단해”

“이 사람은 청소나 빨래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한동안 살아보니까 살림꾼 체질이에요. 그럼요, 살림 그게 어디 장난인가요? 하나를 익히면 스스로 둘 셋을 깨쳐나가는 재능이 필요한 거죠.”

일하는 아내의 이 한마디로 살림하는 재능에 눈떠 주부로 살아온 김전한 씨가 또 한명의 ‘살림하는 남자’로 커밍아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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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한의 살림하는 남편 일기>(R&D Book)에서 소설가 김전한은 그의 좌충우돌 살림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들려준다. 집에서 살림하며 남편에게 분통 터뜨리기도 하는 여느 주부처럼 그 역시 아내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또 온전히 체화되지 않은 주부의 역할 때문에 한국 남자의 모습을 불쑥 드러내기도 한다.

처음 결혼할 때 김전한 씨의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30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했던 그도 다른 남자들처럼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을 기대했었다. 그의 이러한 꿈은 신혼 초에 아내가 끓여준 매운탕의 푹 퍼진 쑥갓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살림과 거리가 먼 직장인 아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엌참견을 하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일거리 주문이 줄어들어갔다. 소위 IMF 탓이었다.

갑작스레 늘어난 시간, 김전한 씨는 주방정리를 했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어오는 아내를 위해 저녁을 차리고 출근을 돕기 시작하면서 그의 집안 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집안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해도해도 티가 안나는 일을 하면서 김전한 씨도 다른 주부들처럼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물을 마실 때마다 물컵을 꺼내 쓰는 아내, 휴일이면 집에서 쉬려고만 하는 아내에 대해 투덜거리기도 한다.

주부 생활 4년이 되어가는 그는 나름의 지혜를 터득하면서 아줌마들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동료로서의 의식같은 거다.

또 “어떤 때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전날밤 씻어 불린 쌀을 가스 불에 올리고, 창문을 열고 쓸고 닦고, 어질러진 아이 장난감은 녀석의 방 장난감 통에 갖다 넣고 정리하고…앗, 이건 어제도 똑같이 한 일이잖아”라는 그는 “울컥울컥 밀려오는 짜증과 자기 연민, 삶의 무의미성이 물묻은 손가락 사이로 간질간질 침범해오면 급기야 우울증 비슷한 기분에 젖어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나 몰라라 집어치우자고 한다. 주부의 마음에 쌓인 언짢은 먼지부터 털어내는 일이 급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영화 <봉자>의 시나리오를 책으로 펴냈고 얼마 전엔 장편소설 <은행나무 길에서 상아를 만났다>를 냈던 작가의 글답게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 집안 일을 하는 남편의 고민, 이땅의 남자로서의 고민 등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쉽게 쓴 그는 가부장제에 대한 꼬집기도 잊지 않는다.

양지 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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