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에버랜드 동물원에서는 북극곰 한 마리가 관람객들을 안타깝게 했다. 굳게 닫힌 철문을 앞발로 계속 긁어대고 급기야 머리를 부딪치는 등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미 철문은 하얀 시멘트가 벗겨져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보다 못한 관람객들이 “들여보내 주세요∼”라고 외쳤지만 폐장할 때까지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날개 펴지 않는 독수리… 무료한 동물들

“만약 당신이 애정을 가지고 동물들을 본다면 그 땐 동물원이 슬프게 보일 것입니다.” 최근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동물사육 실태를 보고한 환경운동연합 동물복지회원모임 ‘하호’는 동물전시장으로서가 아닌 동물복지의 관점에서 동물원 문화를 들여다보았다.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들은 비좁은 사육장에서 날개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고, 사슴·얼룩말 등 초식동물은 풀 한 포기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사육되고 있으며, 고릴라 사육장엔 숲과 나무 대신 숲 그림이 그려져 있고 역시 북극곰 사육장엔 빙산대신 하얗게 칠한 시멘트벽이 있을 뿐이다. 들판에서 뛰어다녀야 할 동물들이 달리기는커녕 돌아다닐 공간마저 없어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다.

국내 최대 규모와 최대 인파를 자랑하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실태가 이러하니 지방 동물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동물 복지는커녕 경영난에 부딪쳐 속속 문을 닫는 동물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적지 않은 입장료와 관람료를 받고 있는 에버랜드 동물원의 경우는 다른 곳에 비해 사육장이 깨끗하고 동물들의 상태도 양호하다는 평이다. 그러나 관람창 없이 관람객들에게 노출된 동물들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내 최초로 사자, 호랑이, 불곰 등 맹수들의 모습을 관람객들이 차를 타고 다니며 볼 수 있는 사파리월드에는 휴일이면 사람들이 몰려 25∼30분 가량을 줄지어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사파리’라고 해서 맹수들의 자연생태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울 연신내에 사는 주부 이모씨는 “사자가 어슬렁거리면서 다니는 걸 상상했는데 이미 길들여진 동물들에게 건빵 같은 걸 던져주면서 간단한 동작들을 선보이게 했다”며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기는 어려웠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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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긴팔원숭이의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아이들. <사진·민원기 기자>

담배불 붙여주기, 동전던지기… 동물학대 심각

그러나 과연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은 동물원 측에 ‘동물복지’에 힘쓰라고 요구할 만큼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형편없다”는 것이 사육사들의 이야기다.

어느 동물원이건 원숭이 사육장 주변에는 과자, 땅콩, 귤껍질, 비닐, 사탕 등 온갖 쓰레기들로 너저분하다. 바로 옆에 “과자나 빵 등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관람객들에게 원숭이 먹이주기는 자연스러운 일로 통한다. 그런가하면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진도견에게 고함을 질러 흥분시키는 아이들도 있고 원앙, 고니와 같은 조류들을 관람하다가 물 속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아이들도 있지만 말리는 이는 없다.

“원숭이에게 담뱃불 붙여주는 아저씨도 있고 동물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나무 가지로 몸을 찌르는 아이들도 있죠. 악어나 하마를 보면 동전을 던져대고 동물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풍선을 들고 다녀요. 옆에서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육사)

이같은 관람문화는 동물학대에 가깝다. ‘하호’ 회원들은 “과연 동물원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나”라고 반문한다.

‘동물자유연대’의 필립 티보 교수(건국대)는 “최근 영국 심리학자들 사이에선 젊은이가 다른 사람에 대해 폭력적일 경우, 이는 종종 동물과 자연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며 “동물을 괴롭히는 십대, 새와 나무에게 잔인하게 구는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관람객들이 동물원에서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동물공연이다. 아이들은 ‘어떤 동물이 제일 인상깊었냐’는 질문에 “침팬지쇼요” “물개공연이요”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끄는 만큼 동물원들은 동물공연장을 마련하고 각종 동물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동물공연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년 서울대공원 동물공연장 건설에 반대해 성명을 낸 생명사랑실천협의기구와 생명체학대방지포럼에서는 “동물공연은 자연을 이해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생태적 가치를 가르치기는커녕, 다른 생명의 존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고 비판했다.

“외국의 환경교육은 어린이들에게 다른 생명체가 어떻게 느낄지 흉내를 내서 생태적 감수성을 가르치고 있다. 동물공연과 훈련은 동물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를 강요하고 이를 보고 즐거워하게 만듦으로써 다른 존재와 공감하는 방식을 가르쳐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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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대공원 동물원.<사진제공·환경운동연합 ‘하호’>

호랑이·표범등 토종부터 보존 특화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올해부터 2015년까지 6단계에 거쳐 ‘생태동물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생태동물원은 지금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지역별로 동물을 전시하던 방식에서 사막, 툰드라, 사바나 등 기후별 전시방식으로 바꾸어 온도와 습도 등 가능한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계획이 확정돼 추진되고 있는 것은 토종생태동물원. 호랑이, 표범, 여우, 삵쾡이, 수달, 황새, 반달곰, 노란목도리담비 등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의 동물들을 보존하고 이를 특화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을 함께 얻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의사 어경연씨는 “어떤 동물원도 야생동물을 가두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계 먹이사슬이 끊어지는 등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고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 주면서 종 보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생태동물원화 계획은 예산확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동물원이 백화점 상품처럼 동물들을 진열하고 관람객들에게 구경시키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동물원은 자연생태와 보존, 복원에 가치를 두어 동물을 사육하고 관람객들에 대한 교육에도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물권이 존중되는 생태동물원이 가능하려면 관람객들부터 그에 알맞은 관람문화 의식을 키워나가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지.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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