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딸깍”

경기도 포천에 사는 이모씨는 지난해 8월 이런 전화를 받고 으레 있는 장난으로 여겨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침묵의 전화는 하루에도 여러번씩 매일매일 이어졌다. 어느 날엔가 전화가 오는 횟수를 세어보니 7번이나 됐다. 9월이 되고 10월이 됐지만 전화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남편을 조심해라. 남편 관리 잘하라’는 익명의 편지까지 오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는 이씨는 “남편 숨쉬는 소리 빼고는 신뢰할 수 없는” 동시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가 괴롭히고 있는지 모르니 사람 전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1300마리 규모의 양돈업을 하는 이씨는 본래 업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많은 대외활동을 했었다. 사업주도 남편이 아닌 그였다. 활달한 성격이었던 이씨는 “사회에서 강하고 대단한 여자로 인정받고 있어서 누구한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며 “밖에 누가 와도 창문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어줄 정도가 됐다”고 밝힌다.

남편 역시 부인의 불신에 진저리가 나기 시작해 “욕설이 오가고 서로 치고 받는” 일이 많아졌다. 이씨는 “머리가 한 주먹씩 빠지고 늘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면서 급기야 하혈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0월 25일에서 12월 20일까지 기록한 결과 걸려온 전화는 총 74회.

경찰의 도움을 받아 12월 중순에야 동네 이장이자 농협감사인 이모씨가 범인임이 밝혀졌다. 평소 동네 다방 주인에게 관심이 있던 가해자는 이씨의 남편이 다방 주인과 자주 만나는 것 같아 ‘집에 전화하면 부인이 여자 전화인 줄 의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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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걸려오는 익명의 전화때문에 입원까지 하게 된 이모씨.

지난해 12월 24일 사태가 커졌다는 사실을 안 가해자가 찾아와 ‘잘못했다’고 하자 이씨는 “너무 무서워 쳐다볼 수도 없어 내 방에 들어가 문 잠그고 가라고 소리를 지른” 후 졸도해 병원에 입원했다.

정신과 전문의는 우울증이라고 진단하며 꾸준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현재 사건은 서울 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에서 한달간 재수사를 지시해 포천 경찰서로 되돌려진 상태이다.

범인은 동네이장 ‘남의 가정 해할 의도는 없었다’

피해자 우울증 극심…다양한 스토킹양상 대책 필요

대부분의 스토킹은 남녀 사이에 병적인 집착과 괴롭힘의 형태로 나타나 한쪽이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당하는 경우로 여겨진다. 그러나 위해를 가할 목적이 아니었어도 가해자의 지속적인 행위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주고 가정파탄까지 불러올 수 있어 스토킹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요구된다.

미국 미시간주 주법에서는 스토킹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이 공포심이나 위협감, 학대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피해 당사자가 실제로 이러한 공포심이나 위협감, 학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반복적, 지속적, 의도적인 위협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스토킹의 개념에 대한 합의도 안 돼 있는 데다 이를 다루고 있는 법안이 없다. 이씨의 경우도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 이외에는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방법이 없는 상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상용 박사는 “이 경우 주거침입이나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경범죄 처벌법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스토킹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스토킹 행위를 다룰 독립 법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송안 은아 기자se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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