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스, 타인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에 만약 눈에 보이지 않은 타인들(복수형)이 거주하면서 아니 동거하면서 불쑥불쑥 자신들의 존재를 여러 가지 행위와 징후로 알려온다면? <디 아더스>는 바로 이러한 오래 되고 익숙한 공포영화적 소재를 다시 끌어온다.

그것도 단순히 다시 빌어오는 것이 아니라 귀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오는 혼동, 귀신의 자기정체성 찾기 과정을 절묘한 장치로 펼쳐내 많은 시네필들의 감탄을 받았던 <식스 센스>의 극적 구성을 슬쩍 이식해 놓음으로써 흥미로운 상호 텍스트성을 가동시키고 있다.

즉 귀신인 정신분석가와 접신 능력을 가진 소년, 이 유사 부자지간에 벌어지는 심리치료의 전이를 통해서 귀신 아버지가 죽은 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납득하는 과정을 담았던 <식스 센스>와 달리, <디 아더스>는 아버지가 부재한 가족, 즉 가부장이 아닌 가모장이 이끄는 귀신 가족의 자기 정체성 인식 과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13-3.jpg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든 유럽의 한복판 영국, 그러나 고립되어 있는 한 섬의 대저택. 이 저택에서 공포의 원천은 감각적으로 포착은 되지만 인지할 수는 없는 타자들의 출몰이 남기는 자취와 흔적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를 더욱 극대화하는 요소는 이 대저택에 가부장이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전쟁터로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부인은 히스테릭한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다.

아이들, 특히 딸은 그러한 어머니를 가모장으로 승인하지 않으며 위기의 국면이 닥칠 때마다 ‘아버지의 이름’‘아버지의 법’을 갈망한다. 따라서 귀신이 출몰하는 이 집에서 공포는 시종일관 거부된 어머니의 몸, 그녀의 히스테리를 둘러싸고 신경질적으로 어른거린다.

그녀는 가부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쇠꾸러미를 들고 집안을 동분서주하며 아이들에게 (보다 원천적인 아버지의 법인) 구약성서를 가르치지만 그 역할이 그녀의 몸에 그리 밀착되어 보이진 않는다.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그녀의 히스테리는 사랑하는 남편의 부재 혹은 그의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읽히지만, 심층구조에서 그것은 오히려 ‘여성의 가부장 되기’가 가져오는 불안 혹은 불능성의 심리육체적 증후로 읽힌다.

이처럼 <디 아더스>는 남성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가부장 되기에 위험하게 매복해 있는 불가능성, 불안과 공포(이것이야말로 당신의 무의식 속에 깃든 타인들이다!)에 대한 하나의 영화적 서사화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이 귀신들과 대면하는 위기의 절정에서 ‘총을 든 그녀’는 모성과 가부장의 권위, 즉 가모장으로서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 영화의 내레이션은 영화 서사의 가장 큰 비밀이자 이 가모장 가족의 정신적 외상이었던 어떤 핵을 드러낸다. 귀신과 접촉하고 귀신을 쫓아내려 애쓰던 이들 가족이 사실은 귀신이었던 것이다.

<디 아더스>는 남성적 판타지를 투사하며 허위적이고 가학적으로 모성신화 재구축에 안간힘을 쏟는 ‘예술영화’ <어둠 속의 댄서>보다 한층 더 다채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남겨 놓는 ‘모성’영화다. 영화의 전체 내러티브에서 결정적인 대전환이 마련되는 지점이 ‘남편/아버지’의 부재를 심리적으로, 인식론적으로 인정하는 지점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남편은 아내의 곁을 떠나고 싶어 가부장의 의무를 버리고 ‘영원히’ 전쟁터를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 자신들이 귀신임을 인식/인정하게 된 이 가모장 귀신 가족은 가부장 인간 가족을 내쫓고 자신들의 저택에 계속 머무른다. 이 마지막 장면은 가모장 가족이 지니는 전복적 힘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귀신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가모장 가족의 현실에 대한 시각적 진술이기도 하다.

<김영옥/ 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