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혁명적인 우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Adoring Four Revolutionary Idols in Korea Area)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제목을 만든 신승수 감독의 새 영화 <아프리카>가 얼마 전에 선보였다.

영화를 보기 전 <델마와 루이스> 같다느니 <밴디트>를 닮았다느니 하는 입소문을 들은지라 기대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유인 즉슨, 앞서 말한 영화를 너무나 감명깊게 봤기 때문.

하지만 이런 비유는 가당치도 않음을 단박에 눈치챘고, 영화 제목에서 내건 ‘혁명’이니 ‘우상’이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망을 했다.(너무 인색한 평이라고 욕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지난해 <고양이를 부탁해>로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이요원(지원 역), <눈물>에서 연기력을 뽐내며 스크린에 등장한 조은지(영미 역)와 <여고괴담2>의 이영진(진아 역)에, 김민선(소현 역) 등 간간이 ‘여성영화’에서 활동한 이들이 함께 손잡은 영화는 우연히 굴러온 총이 줄거리의 중심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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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 지원과 소현은 여행을 위해 소현의 남자 친구가 빌려준(실은 훔친 차다)차에서 총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그냥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계속 꼬인다. 바닷가에서 자신들을 겁탈하려는 불량배들을 향해 쏘기도 하고, 다방에서 집적거리는 날건달들을 겁주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방 레지인(이 영화의 표현에 따르면 그렇다)인 영미와 양품점을 운영하던 진아(이영진)까지 합세해 일은 커져만 가고 시나브로 그들은 뉴스, 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4인조 강도로 돌변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흔히 범죄 영화처럼 섬뜩함이 아니라 이들을 찬양하는 팬클럽까지 만들어낸다. 결국 그들은 온갖 범죄를 저질렀지만 팬클럽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했다며 끝맺는다.

영화는 ‘총’을 매개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그리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자유분방하고 명랑쾌활한 4명의 여성이 이겨냈음을 나타내려 했을까? 아님 진정한 여성성을 보려주려 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것이 있나? 하지만 영화는 이도 저도 성공하지 못했다.

지원은 철딱서니 없는 영미에게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다.(그렇게 치를 떠는 폭력성을 왜 또 여자가 여자에게 저지르는지). 또 다방레지인 영미와 양품점 진아는 지원, 소현과의 갈등이 빈번하다. 같은 여성이지만 대학생인 지원과 소현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둘의 감정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남직하고 이를 위한 해결 고리가 있어야 할 법하지만, 영화는 정면으로 도전하기보다는 슬쩍 건드린다.

말미에서 모두가 ‘하나’됨을 나타내지만 이러한 결론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떤 기회를 통해 그렇게 된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한편 뒤죽박죽인 이미지는 좀체 종잡을 수 없다. 이들 일행은 산에서 만난 조폭 일행에게 그들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어느새 김치를 담궈 주고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돌변한다. 총으로 무서울 것 없이 덤비던 용감무쌍함은 온데 간데 없다.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결국은 남성의 힘으로 해결되는 모습은 참으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덧붙여 영화는 억지 웃음을 짜내려 애쓴다. 패러디를 선보이려 <주유소 습격사건>의 한 장면을 연출해 보지만 엉성하기 그지없다.

아직 우리 나라는 총기 소유는 불법이다. 하지만 감히 이 젊은 여성들에게 총을 건넨 감독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일단 총은 압수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훗날 진정한 여성성을 가진 영화에게,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 다시금 돌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여성들이 총같이 무서운 도구가 없더라도 성폭력에서, 남자들의 잔인무도한 짓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야 두 말할 필요 없겠지만 말이다.

김장 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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