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에서 반성폭력 운동이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성노동운동은 비교적 침체되어 있었다. 대학 여성운동 진영이 여성노동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노동 개념과 노동운동의 방향이 여성들의 현실, 특히 여대생들의 현실과는 잘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대학 여성운동 단위들이 여성노동운동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여성노동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12일 연세대에서 열린 ‘대학내 여성노동 대토론회’는 이런 고착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던 자리라는 점에서 반갑게 느껴진다. 이 토론회는 살맛나는 세상, 관악여성모임연대,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모여 만든 모임 ‘맷돌 굴리기’가 주최하였다.

토론회는 지난 해 가장 논쟁거리가 되었던 ‘여성관련 노동법 사안’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했다. 발제를 맡은 레드(살맛나는 세상)씨는 “여성의 연장·야간·휴일근로제한 규정 완화는 현재의 노동유연화 정책과 맞물려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더욱 해치게 될 것이다. 또한 임신한 여성과 임신하지 않은 여성을 구분하여 보호하겠다는 것은 어머니로서의 여성만을 보호하겠다는 가부장적 발상이다”라고 주장하며 “앞으로 대학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여성의 신체적 경험의 차이, 노동조건과 노동경험의 차이를 강조하며 여성의 건강권과 노동권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또한 가부장적 모성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모성보호’를 대체할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좌파의 여성노동 담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은 레디(관악여성모임연대)씨와 호이(살맛나는 세상)씨는 “진보진영에서 여성노동 문제에 대한 발언이 크게 늘었지만, 학내 정치조직과 진보정당에 대한 조사 결과 여성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이 당위적 수준에 그칠 뿐 문제의식이 폭넓게 공유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대학 여성운동 진영이 진보진영의 여성노동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배울 것은 배우는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토론회에서 가장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여대생의 노동 의식과 여성주의적 전략 세우기’였다. 발제자인 지영(관악여성모임연대)씨와 버리(관악여성모임연대)씨는 여대생들의 취업의식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해 여대생들의 노동의식과 여성노동자의 척박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었고,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여성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기제로 사용되는 것과 동시에 노동 자원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보임으로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재개념화를 시도하였다.

이들은 “여대생들에게 여성노동 현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여성노동 문제를 단지 저임금 노동자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 문제와 결합된 독자적 문제로 상정해야 한다”고 제안하여, 여대생들을 여성노동 운동의 대상이자 주체로 세울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였다.

김한 정연/서울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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