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묻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중략)

나는 어머니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를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能)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박노해, ‘거룩한 사랑’)

모성이란 그런 것이다. 절대 하지 못할 일도 눈 딱 감고 할 수 있게 하는, 절대 하기 싫은 일도 맘 고쳐먹고 일상으로 만들 수 있는…. 내가 한 아이의 어미로서 내 자식을 위해, 그 하기 싫어하던 일들을 이제는 ‘하고 싶어서’ 하고 있다. 물론 손에 피를 묻혀가며 닭 모가지를 비틀 일은 없지만, 처녀 적엔 하지 못했던 생선 손질이나 굽기는 그 대표적인 예다.

불 위에서 익어 가는 생선의 눈빛은 정말이지 ‘너 다음 생에서 보자!’ 하는 유언이라도 남기는 것 같아 끔찍스럽다. 하지만 생선엔 단백질도 풍부하고, 특히나 등 푸른 생선은 피도 맑게 해주고 머리 좋게 해준다는 DHA도 많다며.

그때까지는 그게 낙이었다. 적어도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은 스코트와 헬렌 니어링 부부의 채식과 자연친화적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채식주의에 대한 상식이 없었던 나는 그저 좋은 채소를 어떻게 고르고 또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 그것만 엿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근데 채식주의가 단순히 먹거리 재료의 문제만은 아님을, 그리고 자연친화적 삶과, 생각보다 충격적인 육식의 문제들까지도 한꺼번에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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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이냐 채식이냐에 대한 아홉 가지 이유 앞에서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 손으로 내 아이에게 해를 가하고 있었다니. 새삼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실천이었다. 이론적으로야 당해낼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언제 아는 대로 다 실천하고 살았나? 그것도 하루 아침에 먹고사는 패턴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가 말이다.

책 한 페이지 보고, 아이 얼굴 한번 쳐다보면서 고심고심 깊은 고민에 빠졌다. 채식, 소식, 가능한 생식, 저염식, 가공식품 안 먹기, 자연친화적 삶, 할 수 있다면 자급자족.

채식…좀 쉽게 시작할 순 없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의외로 채식에 대한 정보들이 꽤 많았다. 각종 채소 조리법과 자연치유법, 집에서 손쉽게 채소 기르는 방법, 채식뷔페 등 채식전문점들을 소개해놓은 사이트, 우리 나라 전통 채식인 사찰음식에 대해 꼼꼼히 소개해 놓은 곳, 채식가공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쇼핑몰도 있다.

이쯤이면 그래, 채식! 한번 해볼 만도 하겠다. 첨부터 완전 채식은 못하더라도...

그런데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은 죄다 채식주의자인 모양이다.

슈바이처, 아인슈타인, 뉴튼, 피타고라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톨스토이, 죠지 버나드쇼,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하트마 간디, 칼 루이스, 비틀즈, 밥 딜런, 마이클 잭슨까지?....또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브룩 쉴즈,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 중에도 채식하는 사람 많네.

흠...채식과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고민, 그 시절 어머니들이었다면 어떻게 하실까...?

그러고 보니 우리 어렸을 땐 어머니가 콩나물도 직접 기르셨고, 커다란 화분에 대파랑 상추도 모두 심으셨었다. 된장이며 고추장도 직접 담가 드셨고…. 우리에게 거창한 자연친화적 삶을 설명하지는 못하셨어도, 할 수 있는 한 이미 그런 정성을 우리 몸에 쏟아부어 주셨건만 난 고작 책 한권 읽고 무슨 몰랐던 엄청난 진리라도 알게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온실처럼 볕 잘 드는 베란다를 텃밭 삼아 상추랑 대파랑 심어보고, 좋은 시루 하나 장만해서 콩나물도 길러봐야겠다. 그렇게 시작해 봐야지.

<손창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도 김치찌개 끓이며 철학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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