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호주제폐지운동 확산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자와 남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나누며 일상적으로 차별을 일삼아왔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여성들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호주제 폐지운동은 양성평등과 민주화를 원하는 합리적인 기운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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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모임 운영위원 이유명호씨는 호주제 폐지운동은 역사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미풍양속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호주제는 삶의 질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시대착오적 발상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들이 호주제 폐지운동에 자발성과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성차별 뿌리, 민주사회 걸림돌

호주제폐지를 위한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호폐모)’에는 현재 5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호주제는 남녀차별, 귄위주의를 비롯한 온갖 부조리를 양산,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진입을 방해한다”며 매월 거리서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서명에 동참한 사람은 이미 수 만명을 넘어섰다.

호폐모 회원 김씨는 “호주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떻게 이런 제도를 지금까지 남겨둘 수 있었을까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법 개정을 미루는 정치권도 문제지만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도 문제라는 생각에서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고 전한다.

호주제 폐지운동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평화운동이다. 97년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남녀성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에서였다.

당시 토론회를 주최한 대한여한의사회측은 “한의사의 90% 이상이 아들 낳게 해달라는 여성들에게 있지도 않은 아들 낳는 처방을 내려주고 있었는데, 이는 의료계의 문제가 아니라 아들만이 대를 이을 수 있는 호주제가 근본원인임을 비로소 알게됐다”고 전한다. 결국 호주제가 위험수위에 달한 아들밝힘증, 여아낙태 등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확대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호주제가 존속하는 한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는 요원하다는 얘기다.

이런 취지는 종교계, 학교 등 전 사회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해 천주교·기독교·불교·원불교·천도교 등 종교 여성들은 “평등한 가정문화, 사회문화를 위해”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 국회 앞에서 ‘호주제폐지를 위한 종교 여성 행진’을 벌이면서 압력을 넣기도 했다.

또 최근 각 학교에서 양성평등교육 시간에 호주제의 성차별성을 가르치는 것이나 ‘호주제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지난 해 재선거에서 괄목할만한 지지를 얻은 사회당 후보들의 사례, 종중재산 분배와 관련한 여성들의 소송, 호주제위헌소송 비용에 성금을 내는 시민들의 지지는 호주제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보여준다.

가정 붕괴? 행복한 가정 시작!

호주제는 공기처럼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폐해를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에 대해 “가정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아들중심의 호주승계가 무의미해지므로 더 이상 아들낳기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 1년에 3만명씩 뱃속에서 죽어가는 ‘여아낙태’도 뿌리 뽑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심각한 성비불균형도 자연스레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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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호주제 폐지 홍보를 위해 제작한 엽서

사별이나 이혼, 재혼, 독신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의 구성원들이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손가락질 당하는 일도 없어진다. 결국 호주제가 폐지돼야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가정도 가능한 것이다.

또 모든 종류의 편견과 차별, 불공정에 대한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민주적인 사회를 가꿀 수 있게 된다. 결국 호주제 폐지운동은 단순한 제도개선 운동이 아닌 우리 사회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평화운동인 셈이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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