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낯선 곳에서 맛본 해방감
아주 낯선 곳에서 맛본 해방감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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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뜻깊은 여행
여자 다섯이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과 혹은 연인과 보내야 한다는 그 수많은 가부장적, 정치적 메시지를 껄껄껄 비웃어주고는 연휴를 우리끼리 모여 지냈다. 몇은 서울에서 또 몇은 광주에서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 대전에 모였다.

다섯 모두에게 아무런 연고지가 없다는 것과 광주와 서울의 중간지점이라는 것을 이유로 우리는 대전에서 무작정 모이기로 했다. 계획만 무성한 여행이 되지 않도록 가능한 뼈대만을 남겨두고 모두다 내다 버렸다. 그것은 무(無)계획이라기보다 자유로운 여행을 위한 도전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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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지는 대전역. 우리는 대전역 앞에서 분주하고 바삐 움직이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워대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쉬듯 담배를 피우며 서로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하하∼ 이 무슨 요상한 해방감인지 눈물이 다 나는 것 같았다.

잘난 체가 몸에 밴 여자와 소리 지르기가 특기인 여자와 손톱 기르기가 취미인 여자와 예쁜 딸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여자와 마녀가 별명인 여자. 그 다섯은 행복하고 뜻깊은 연말을 위해 모두 집을 떠나 마을을 떠나 고향을 떠나 이 낯선 곳까지 떠나와서야 담배 하나를 피워 물며 해방감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 낯선 곳까지 와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왜 집을 떠나서 고향을 떠나서 이 곳으로 흘러오고 싶었을까?

계룡산 자락의 동학사에 짐을 풀었다. 소리 지르기가 특기인 여자가 준비해온 꼬마 폭죽 5개를 가지고 옅은 개울이 흐르는 다리 위로 가서 하나씩 불을 당겼다. 지지직∼ 타오르는 폭죽을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르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는 모여 앉아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라고 무시하며 냅다 야단을 치며 요금을 받던 버스기사 아저씨, 바쁘다는데 느릿느릿 운전하던 택시기사, 휴게소에서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중년의 두 사내, 사는 내내 가슴을 멍들게 한 아버지, 악쓰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하려 들지 않는 남동생, 그리고 예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페미니스트 때문에 예쁘고 평범한 본인이 주눅든다고 자신의 소설에 버젓이 무식함과 식상함이 잔뜩 담긴 문구를 쓴 작가 이야기… 아무리 풀어도 모자라는 가부장 사회의 갖가지 군상들을 경험을 빌어 혹은 흥분하며 혹은 흐느끼며 나누었다.

여자 다섯의 여행은 서로를 나누고 힘들었던 지난 한해를 부둥켜안아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뜻깊은 것으로 따지자면 그 어떤 여행보다도 가치 있는 별 다섯을 주고 싶으며 내 집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내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아주 낯선 곳으로 흘러가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여자들이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버럭 화가 치민다. 하지만 고정희님의 시처럼 내가 마주잡았던 그 손들이 내게 가장 큰 위로이며 희망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강문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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