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언/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http://antihoju.jinbo.net)

요즘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여성들이 과격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들이 과격해서가 아니에요. 적어도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호주제 때문입니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남편 집안에 강제 편입이 됩니다(夫家入籍).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살아온 가족들과는 법적으로 남남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여성들은 충격을 받지요. 결혼하면 이제 남편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대를 이어줄 아들을 낳아서 남편의 성과 본을 따르게 해야만 합니다(父家入籍, 남아선호). 호주제가 규정해 놓은 남성 우선으로 호주가 승계되어야만 대가 이어지고 가(家)가 유지되니까요. 간혹 여성이 호주를 승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여성도 결혼하면 남편 집안으로 강제편입 되므로 가(家)를 유지하려면 역시 아들이 필요한 것이죠.

호주제로 인해서 결혼생활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혼한 남성들은 어떨까요? 양심에 상처를 입습니다. 호주제 때문에 말입니다. 아들 낳아야 한다, 이제 우리집 며느리가 되었으니 친정 부모님 생일보다는 우리집 조상들의 제사에 신경써야 한다는 집안 어르신들의 보이지 않는 성화에 힘겨워 하는 아내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어르신들의 말씀을 감히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그 남성은 앞으로 집안을 이끌어갈 ‘호주’가 될 몸이니까요. 계속 이 남성은 아내와 이런 가풍(?)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결국 현실(남성우월적인 환경)에 적응하겠죠.

호주제 때문입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호주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전통이란 미명하에 이것을 지켜줘야만 하는가, 고민해야 합니다.

덧글 : 어떤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재언씨, 30년 가까이 살던 우리 집과는 이제 남남이 되어야 하고 이제 남편 집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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