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살고자 했던 비운의 여인 - 국립발레단의 신작 '마타 하리' -
나비처럼 살고자 했던 비운의 여인 - 국립발레단의 신작 '마타 하리' -
  •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22 06:40
  • 수정 2018-10-23 15: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연속으로]

나비처럼 살고자 했던 비운의 여인 

- 국립발레단의 신작 '마타 하리' -

1917년 10월 14일 밤, 프랑스의 생 라자르 교도소 12호 감방. 이곳 장면으로 작품은 열린다. 주인공은 다음날 총살형에 처하게 될 여자 사형수. 41세를 갓 넘긴 나이에 죽음을 앞둔 이 여인의 머릿속에 환희에 전율하고, 고통에 울부짖던 옛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비참했던 결혼생활. 이혼의 아픔을 떨쳐내기 위해 파리에서 무용수 생활을 하며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가운데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시절. 최고의 발레리나를 꿈꾸며 높은 명성의 발레 기획자 댜길레프를 찾아갔으나 냉대를 받았을 때의 좌절감. 러시아의 젊은 장교 마슬로프와의 사랑과 그의 배신. 고위 정보요원과의 만남과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이중간첩혐의 조사. 이런 회상이 작품의 1막과 2막으로 구성되면서 에필로그는 다시 12호 감방에서 형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1905 무희 마타 하리(박슬기 수석무용수)의 파리 기메박물관 공연을 발레 동작으로 재현한 연습 장면. 사진_국립발레단 제공
1905 무희 마타 하리(박슬기 수석무용수)의 파리 기메박물관 공연을 발레 동작으로 재현한 연습 장면. 사진_국립발레단 제공

이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서 스파이 죄로 처형당한 네덜란드 출신의 여인 마타 하리((Mata Hari).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지는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강수진)의 ‘마타 하리’는 남성 중심의 억압적 사회 분위기 속에 자유와 사랑을 꿈꾸며 발레리나로 성공하고 싶어 했던 그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발레는 많은 사람이 흔히 알고 있는 ‘미모의 전설적인 이중스파이’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내용의 작품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여성의 욕망을 당당하게 추구하다 스러져간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 ‘마타 하리 무죄론’을 굳게 믿고 있는 이 작품의 안무자 레나토 자넬라(Zanella, 전 빈국립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는 프랑스가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무게를 싣는다. 1차 대전 당시 독일과의 주요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했던 프랑스가 작전실패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마타 하리가 독일에 프랑스군 기밀을 제공하는 바람에 패했다”라며 그녀를 간첩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간첩죄로 총살형을 당한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  마타 하리의 삶을 소재로 한 국립발레단의 신작 발레 마타 하리를 안무한 레나토 자넬라. 사진_강일중
간첩죄로 총살형을 당한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 마타 하리의 삶을 소재로 한 국립발레단의 신작 발레 '마타 하리'를 안무한 레나토 자넬라. 사진_강일중

자넬라는 최근 작품 설명을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마타 하리가 “부당하게” 처형된 것은 그녀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남자의 세상에서 여성해방을 누렸고, 자유로운 삶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마타 하리 본인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중스파이 누명을 쓰게 된 것은 여자로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타 하리가 생전에 “태양 아래서 나비처럼 살고 싶었다.”라며 자유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욕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냈던 말은 작품에서 무용수가 나비를 날리는 듯한 아름다운 몸짓으로 표현된다.

그 외에도 국립발레단의 ‘마타 하리’에는 관객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들이 여럿 있다. 작품 내용의 실화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마타 하리와 관련된 기록영상과 사진이 배경이미지로 투사된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파경에 이른 결혼생활과 이후 파리에서 무용수로 성공하고, 사교계의 스타가 되는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1막에서는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기메박물관에서의 동양적이고 관능적인 춤 공연 장면이 발레 동작과 의상을 통해 재현된다. 20세기의 전설적인 발레무용수인 니진스키와 그가 속했던 발레 뤼스의 설립자 댜길레프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마타 하리는 발레 뤼스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 무렵 발레리나로서의 꿈을 꾸고 오디션을 보려 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작품에는 마타 하리의 간청에도 댜길레프가 “스트립댄서가 어떻게 발레를 하느냐.”는 식으로 거절하는 대목이 나온다. 니진스키가 출연하는 발레 속 발레 장면도 있다.

마타 하리가 스파이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상대적으로 어두운 이야기가 진행되는 2막에서는 그녀가 전쟁터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 러시아의 젊은 장교 마슬로프와 사랑을 나누는 2인무가 중요 장면의 하나로 꼽힌다.

강일중. 공연 컬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