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는 ‘특수’한 사건일까? 최근 유명인부터 일반인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성관계나 개인적인 영상물로 협박당하거나 유포 피해를 호소하면서, 불법촬영물 범죄는 더 이상 특수한 사건이 아닌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에 올 한해 벌어진 주요 사건을 모아 살펴봤다.

여성 연예인 ‘영상유포 협박’ 남성

한 달 새 둘이나 나와

헤어디자이너부터 대학생·회사원까지

알고보면 ‘우리 주변의 범죄’

피해자 정신적 고통 극심한데

벌금·집행유예 판결이 대부분

불법촬영·유포 범죄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진 배경에는 유명 남성 헤어 디자이너 최종범(27)씨의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사건이 있다. 최씨는 최근 사귀던 여성 연예인과 다툰 후,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최씨를 강요·협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피해자가 무릎을 꿇은 채 “동영상을 유포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CCTV 영상, 최씨가 관련 내용을 언론에 알리려 시도한 사실 등이 공개되며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최씨는 “협박 의도는 없었고 영상을 유포하지도 않았다”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분노한 여성들은 “리벤지포르노 범들을 강력 징역해달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에 나섰다. 지난 4일 시작된 이 청원 참가자 수는 17일 오전 10시 기준 현재 23만2600명을 넘어섰다.

최근 유명 팝아티스트 또한 남편으로부터 성관계 동영상 유포 협박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피해 여성은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인 성관계 동영상 유포 협박을 받고 있다”며 “너무 무섭고 두렵고 수치스럽고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불법촬영물을 무기 삼아 여성들을 협박하거나 가해하는 남성들은 이미 너무나 많다. 강모(26)씨는 지난 3월 전 여자친구에게 “내가 말한 최악의 상황이 이거야. 네가 무시하고 답장하지 않으면 영상을 학교 사람들이랑 인터넷에서 보게 할 거야”라는 메신저와 함께 과거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전송했다. 재판부는 협박 혐의로 기소된 강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A(29)씨는 “사귈 당시 찍었던 성관계 영상을 갖고 있다”며 전 여자친구를 협박한 뒤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강간상해 혐의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했는지, 인터넷에 유포한 게 있는지 등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법촬영물 때문에 여성을 살해한 남성도 있다. B(47)씨는 지난 5월 인터넷에서 본 여자친구의 과거 성관계 동영상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던 중 전주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여자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지난 10월 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독한 X 답장 끝까지 안 해주네” “내 폴더에 너랑 함께 한 모든 것이 들어 있어.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 박모(37)씨는 사귄 지 4개월 된 여자친구가 이별통보를 하고 연락이 되지 않자 전 여자친구 블로그에 욕설과 함께 불법촬영물 유포를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재판부는 협박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지난 9월 19일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학생 C(24)씨는 부산의 한 술집에서 이별통보를 받자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여자친구의 지인에게 전송하고, 한 달 뒤 말다툼을 하던 도중 여자친구를 폭행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지난 8월 15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한국항공대 한공운항학과 남학생은 지난 5월 8월 오후 8시경 해당 학과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21초 분량의 남녀 성관계 영상을 올렸다. 당사자인 남학생은 당시 “실수로 사적인 동영상이 올라갔다”고 사과했지만 경찰은 해당 남학생과 영상 속 상대 여성을 조사한 결과, 동영상을 올린 행위에 고의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사를 종결했다.

지난 3월 한 여성은 실력파 발라드그룹 리드보컬 D씨로부터 불법촬영물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교제 당시 D씨가 동의 없이 촬영했던 성관계 영상을 알게 됐고, 헤어진 뒤로도 상처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또 “이후에도 영상통화를 하자며 수차례 몸 영상을 요구했고 거절하면 지속적인 압박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포털사이트에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12일 한 여성은 “내 영상 가지고 협박했던 전 남자친구는 지금 여자친구와 아주 잘 사귀고 있는 게 너무 소름 돋는다”며 “저 여자 분은 자기 남자친구가 과거에 성관계 영상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거 꿈에도 모르겠지”라고 적었다. 자신을 18세 미성년자로 소개한 또 다른 여성 또한 “전 남자친구와 성관계할 때 찍은 영상이 있는데 유포하지 않는 조건으로 또 다시 성관계를 요구받고 있다”고 했다.

불법촬영유포 협박 받았을 땐

협박 내용·시간·장소·내용 정확히 기록

유포 시 영상물 저장·캡처해

방통위·사이버수사대 등에 신고

그렇다면 이처럼 불법촬영 협박을 받았을 땐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관계 영상촬영물 협박 및 유포 대응방법’을 통해 대응법을 제시했다.

민우회는 “협박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협박내용이 담긴 문자나 이메일을 저장하고 통화나 대화는 녹음하라. 가해자가 협박할 때 시간·장소·내용을 정확히 기록하면 좋다”고 밝혔다. 이어 “또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해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확인 후 놀라서 지우면 안 된다. 이후 협박죄, 정보통신법위반죄 등으로 가해자를 신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불법촬영물이 유포됐을 땐 “영상을 본 즉시 다운로드해 저장하거나 또는 게시된 화면을 캡처해 저장해야 한다”며 “몰래카메라 확산 중단을 위해 게시된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 사이버수사대를 통해 신고하거나 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하면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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