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소비자 마음 읽기 ]

소비의 주체로서 다양한 트렌드를 만들고 또한 추종하는 여성 소비자. 한 달에 한 번 충남대학교 구혜경 교수와 함께 그들의 생활과 심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적인 의견과 무관합니다. <편집자 주>

가정간편식 (HMR)의 미학: 편리하되 근사한 집 밥 한 끼

맛있는 식사 한 끼가 주는 행복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한 끼 줍쇼”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평범한 가정을 급습하여 밥 한 끼를 달라고 한다. 그 프로그램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한 끼란, 엄마의 손맛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의 추억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보약이다. 다이어트 중에도 치팅데이가 있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또 가족의 다른 말인 식구(食口)의 의미가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우리 삶에 있어 ‘(잘) 먹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중요하지만 하루 삼시 세 끼를 모두 제대로 차려 먹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HMR (Home Meal Replacement) 이라는 가정 간편식이 이러한 고민을 많이 해결해 준다. 영문명을 살펴보면 집 밥을 대신해주는 간편한 가정식이다. 예를 들면 도시락 같이 조리과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거나, 단순한 조리과정만을 거쳐 먹을 수 있는 가공밥이나 국, 탕 종류 그리고 샐러드나 간편 과일 상품 등이다.

사실 과거에도 인스턴트 식품, 레토르트 식품, 즉석요리 등의 이름으로 유사한 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2017년을 기준으로 가정간편식 시장은 3조원 규모이며, 성장률 자체가 매우 높다. 유독 최근에 가정간편식이 더욱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가 게을러져서? 여자가 요리를 잘 못 하게 되어서?

사실 “집 밥 = 엄마가 해주는 밥 = 정성이 가득한 식사 = 잘 먹은 한 끼”로 연상된다. 가정이 있는 일하는 여성이라면, 늘 식사 준비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된다. 가사도우미나 부모님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말이다. 매번 집 밥을 차려 내기 어렵기 때문에 외식, 배달, 반찬 사다 먹기 등 각종 대안을 마련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내가 직장 핑계로 내 가족에게 제대로 밥도 못 해 먹이는 건 아닌가?” 하는 죄의식이다.

이는 전업주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둘 혹은 셋의 식사를 위해 매 끼니 다르게 준비한다는 것은 시간이나 돈에서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작업이다. 육개장 한 그릇 만들어 먹기 위해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찾고, 재료를 구매하고, 재료 다듬고, 썰어서 끓이고, 먹고 그리고 치우는 등의 과정을 생각하면 그냥 사 먹는 것이 백 번 낫다.

 

< 마트에 진열된 HMR 식품들 >

급속하게 성장하는 "엄마 손 맛" 가정 간편식 3조 시장

마트에 가거나 홈쇼핑 채널을 보면 최근 “맛있는 집 밥”을 주겠다는 상품들이 넘쳐난다. 간편한 조리과정 만으로도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외식이나 배달, 반찬가게를 이용할 때마다 느꼈던 묘한 죄책감을 한 방에 해결해 준다.

어떻게? 요즘 HMR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그냥 데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살림살이를 이용해서 끓이고 굽고 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우리 식구 입맛에 맞게 물의 양을 조절할 수도 있고 집에 있는 재료들을 더 투하할 수도 있다. 너무 간편한 것은 마음이 불편하며 내 게으름의 징표인 것 같았는데, 조금만 간편해지고 약간 내 손길을 더하니 이 “죄의식”이 해결된다. 그 덕분에 준비 시간은 확실히 줄이지만, 밑 반찬 만으로 차린 밥상이 아니라 근사한 주 요리(main dish)나 따끈한 국을 차려내어 집 밥을 완성할 수 있다.

 

< 마트에 진열된 HMR 식품들 >

집 밥 차리기에 부담을 느낀다고 하면, 혹자는 요즘 시대에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할 것이고, 밥 하는 일은 특정한 성역할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최근 HMR은 1인 가구 증가와 더불어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1인 가구에게, 대충 먹는 게 아니라 잘 차려 먹는 한 끼 식사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행위로서 의미가 있다.

잘 차려 먹는 밥은, 나와 가족에 대한 존중

밥을 잘 차려 먹는 것은 나와 우리를 위한 의미 있는 행위이고, 잘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증거이기도 하며, 나 스스로를 잘 대접해 주는 행위이다. HMR이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간편함뿐만 아니라 “마음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경험과 의미가 충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라면: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바쁘게 동동거리는데, 제대로 행복한 집 밥을 해먹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매일 손수 밥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가끔 전문가의 손길이 담긴 HMR을 당당하게 이용하고 우리 식구 입맛대로 손 맛도 가미할 수 있다. 그러면 훌륭한 우리 가족의 집 밥이 완성된다.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행복이 된다.

기업이라면: 간혹 ‘엄마의 손맛’, ‘집 밥’을 강조하는 식품들 중에 형편없는 것들도 있다. 최근 급성장하는 HMR 생산 기업들은 마케팅 목적으로만 ‘엄마 손 맛’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진짜 손 맛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가 HMR에 기대하는 진심은 좋은 식재료의 사용, 깨끗한 조리 과정, 나트륨 함량을 줄이는 등의 영양 균형을 위한 실질적 노력들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소비자와 기업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구혜경. 여성신문 전문 리포터로서 재능기부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국내 대기업에서 화장품 마케팅 업무를 10여년간 수행한 바 있다. 현재는 소비자정보, 유통, 트렌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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