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한 가부장제 그 이후를 그리는 진선미 여가부 장관]

안전한 여성의 삶 구현·

다양성 존중받는 사회·

차별 없는 일터 실현 추진

 

9월 27일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가족부
9월 27일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가족부

20년 전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며 공고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데 일조한 인권 변호사가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 수장으로 돌아왔다. 진선미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은 “가부장제의 낡은 규범은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방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여가부가 ‘가부장제 이후’의 새로운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선봉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진 장관은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임명장을 받고 별도의 취임식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 진 장관은 내정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여가부를 이끌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변호사 시절부터 여성과 아동,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앞장 서온 인권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그 공로로 2011년 여성신문사가 선정하는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미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 장관은 1998년 배우자와 결혼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고서도 11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혼인신고를 했다. 

진 장관은 2012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였던 ‘소라넷’ 폐쇄에 앞장서며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했고, ‘위장형 카메라’ 판매를 규제하는 ‘위장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이외에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혈연·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가족 구성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보호법 등을 대표 발의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의정 활동에도 집중했다.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진선미 당시 후보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진선미 당시 후보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진 장관은 취임사에서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의 삶 구현 △다양성 존중받는 사회 △차별 없는 일터 실현 등 3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부처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먼저 성희롱·성폭력과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과 데이트폭력 등 모든 여성폭력에 대응하는 범정부 컨트롤타워로서 여가부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회 계류 중인 ‘미투’와 디지털 성범죄 법안 132개의 제·개정과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에 여가부가 적극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민간기업의 견고한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고위관리직 여성비율 목표제’ 도입도 추진한다. 주요 기업과 협약을 맺고, 민간기업의 고위관리직 여성비율을 해마다 발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했다. ‘기업 성차별 사례 100일 신고창구’도 운영하기로 했다.

가족정책의 기반인 ‘건강가정기본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1인 가구의 증가와 혈연과 혼인 외에 다양한 결합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가족정책의 틀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성평등 교육 혁신 2.0’을 통한 포괄적 성평등 교육 확산도 추진한다.

화해·치유재단 문제는 철저히 피해자 관점에서 하루속히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사실상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통보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으로 설립됐다.

진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외교적 관계도 고려해야 할 사안인 만큼 우려하는 것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미 재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방식과 시기가 축적돼 있어서 위안부 할머니와 지지하는 분들의 의견 등을 수렴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진 장관은 “성평등을 위해 타오르는 지금의 ‘불꽃’을 제도와 문화라는 ‘등불’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성가족부”라며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법’을 잃었다. 가부장제의 낡은 규범은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방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평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관계 맺는 법을 찾아가는 여정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던 호주제는 사라졌다. 그 이후 진 장관 말대로 가부장제의 낡은 규범이 사라지고 있지만, 가부장제는 아직 산산히 조각나지 않았다. 여가부 장관으로서 내건 ‘안전한 여성의 삶 구현·다양성 존중받는 사회·차별 없는 일터’가 완성돼야 ‘가부장제 이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부장제 균열 내기에 힘을 쏟아온 진 장관이 ‘가부장제 이후’를 실현하기 위해 보여줄 향후 행보에 여성들의 기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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