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혼모 정책 들여다보니

양육 미혼모(부)는 혼자서라도 내 아이를 지키고 키우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 양육과 생계의 책임을 혼자서 짊어지는 고생길이 열리게 될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아이를 선택했다. 심지어 살던 지역에서, 가족의 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선택은 용감함을 넘어선 비장한 결단이다. 지난 7~9월에 걸쳐 미혼모들과 시설, 관련 정책을 취재하면서 만난 이들은 힘든 점이 한 두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아이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자신의 아이를 책임지면서 자립 의지를 불태우는 미혼모들에게 국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비록 저출산 대책과 맞물려 미혼모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동양육비 인상, 돌봄서비스 강화, 임대주택 우선 대상 등등 그들이 당면한 어려움과 장애물을 제도를 통해 보완해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 관점이 머물러 있다. ‘의지’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립’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미온적이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자립 실현의 기반이자 핵심은 일자리다. 그러나 임신한 사실을 안 미혼모들은 대다수가 직장을 떠나고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된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당장 몇 달 후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출산 후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취업을 지원하기는커녕 갖고 있던 일자리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무능한 감시자일 뿐이다.

심지어 정부는 일하려는 의지도 꺾는다. 부산에서 만난 미혼모 A(26세)씨는 “최저임금을 받고 일해도 저소득 한부모 소득기준에서 탈락한다”고 성토했다. 저소득의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수급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4대 보험이 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중위소득 52%이하로 2018년 기준 월 148만원)

인간에게 일은 생계수단만이 아니다.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연결망, 정체감을 향상시키는데도 기여한다. 지난 8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오사카부립대학교 오카와 사토코 간호학과 교수는 “일자리는 경제적인 수단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두 가지 기능이 일자리를 통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에서 차별과 고립을 느끼는 미혼모들에게 일자리가 특히 중요한 이유다.

일본은 여성 취업 장려 정책과 맞물려 한부모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오사카시보건소에서 ‘10대엄마교실’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사에 따르면 한부모의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소개해주고 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지원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모자자립지원인’이 각 도도부현에 있다.

한국에서 미혼모의 일자리 정책은 대상도 제한적이고 교육과 훈련 중심이다보니,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민간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 문제를 풀지 않고 자립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정부도 점차 개선해갈 것이라 기대한다.

다만 일자리 지원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미혼모 정책의 본질이다. 일본 취재를 마무리하며 찾아간 도쿄시의 유일한 24시간 인가 보육원인 세이이쿠 시세이 보육원 원장의 말로 대신 전한다.

“일본의 보육정책이나 제도는 어느 정도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의 정책 전반은 ‘일자리’ 우선이다. 일하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해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어두운 단면도 보게 된다. 일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은 기업과 부모들에겐 편리하지만 아이들 정서상 좋지 않다. 보육시스템의 주인공은 아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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