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연 씨는 17세 때 가출한 후 서울 신촌 유흥가 등에서 성매매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자신처럼 ‘생계형 성매매’에 나서는 가출 10대 여성들이 지금도 신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하연 씨는 17세 때 가출한 후 서울 신촌 유흥가 등에서 성매매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자신처럼 ‘생계형 성매매’에 나서는 가출 10대 여성들이 지금도 신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즘×가정폭력]

탈가정·자립하려는 젊은 여성들 ①

성장기에 가정폭력을 겪은 여성들은 으레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이거나, 어딘가 결함이 있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진다. 편견이 이들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도록, 여성신문은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 자립해 살아가려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계 불안, 낙인, 고립, ‘손쉬운 범죄 타겟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각자의 인생을 설계하고 다른 피해생존자들을 도울 역량을 기르려 노력하고 있었다.

집을 떠난 10대 여성들

성·노동 착취에 무방비 노출

생계형 성매매 나서기도

“그들의 선택 아니지만

사회는 그렇게 보지 않아”

성인이 되기 전 집을 떠난 여성들의 ‘자립’은 외롭고 불안하다. 무엇보다도 성착취 위험에 시달리기 쉽다.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것 이외의 생존법을 찾지 못하는 10대들도 많다. 

정하연(20) 씨는 17세 때 아빠의 구타를 피해 가출했다. 쉼터에 들어갔지만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했고, 두 달 만에 나와 거리를 떠돌았다. 외롭고 막막했던 정 씨는 대화상대를 찾으려 가끔 온라인 채팅에 접속했다. “용돈만남 콜?” “XX 영상 하나당 3만원” “가출소녀 환영” 등 성매매 요구 쪽지만 무수히 날아들었다. “나를 받아줄 다른 쉼터를 찾을 여유가 없었고, 집에 돌아가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던” 정 씨는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했다. 존엄을 팔아서라도 단돈 5만원이 절실했다. 

 

2015년 서울시 ‘가출 청소녀 실태조사’를 보면, 수도권의 가출 10대 여성 218명 중 18.3%가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유는 ‘돈이 없어서’(66.7%), ‘잘 곳이 없어서’(46.2%), ‘배고파서’(28.2%) 등이었다. ⓒ여성신문
2015년 서울시 ‘가출 청소녀 실태조사’를 보면, 수도권의 가출 10대 여성 218명 중 18.3%가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유는 ‘돈이 없어서’(66.7%), ‘잘 곳이 없어서’(46.2%), ‘배고파서’(28.2%) 등이었다. ⓒ여성신문

정 씨는 다른 쉼터에 들어간 후로는 성매매를 그만뒀다. 그러나 가정폭력의 상처 위에 또다른 상처가 생긴 뒤였다. 비난과 처벌을 받을까봐 아직도 남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두렵다고 했다.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지만 월세와 병원비를 내면 남는 게 없어요. 그때 한 남자에게 불법촬영을 당했어요. 아직도 누가 내 사진을 유포하면 어쩌나, 나를 협박하면 어쩌나 무서워요.”

겨우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청소년은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 직면하기 쉽다. 김미나(가명·22) 씨는 부모의 폭언에 못이겨 17세 때부터 3번 가출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괴롭힌다”라고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구 집, 찜질방, 쉼터를 오가다 18세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월 40만원짜리 방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식당 주인의 성희롱 때문에 세 달 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보호자 동의서’가 없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성인이었다면 숙식을 제공하는 공장에라도 갔겠지만,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시간당 6000원짜리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 정도였다. “닥치는 대로 일하는 동안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어요. 성희롱은 일상이었죠. 고용주에게 ‘스폰서’ 제안을 받았고,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어요.”

“탈가정 청소년 중에서도 여성은 더 위험에 처해 있고, 더 착취당하고 있다”고 변미혜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활동가는 말했다. “성매매나 성폭력에 거의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죠. ‘다른 일 해봤자 돈 못 번다’ ‘1년만 벌고 대학 가자’ 따위의 말에 혹해서 (성매매를) 시작하기도 해요. 당연히 그들의 선택이 아닌데도 사회는 그렇게 보지 않지요.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안전망은 사실상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고요.”

 

2015년 5월 24일 밤 서울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에서 청소년이동쉼터 자원활동가들이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5년 5월 24일 밤 서울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에서 청소년이동쉼터 자원활동가들이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탈가정 청소년 안전 보장하는

청소년쉼터 “오히려 불편·억압적”

절반은 제 발로 나가

한국에서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만 9~24세)이 집 밖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법은 사실상 보호시설 입소뿐이다. 경찰, 여성긴급전화 1366, 청소년 관련 기관 상담전화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거주지에서 가까운 쉼터로 연계돼 긴급 입소하고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있다. 청소년쉼터는 전국 각지에 약 130곳 있다. 거주지와 무관하게 원하는 쉼터를 골라서 입소할 수 있다. 

그러나 쉼터는 어디까지나 ‘원가정 복귀’ 전 임시 거처다. 아동학대 사건 중 재학대 비율이 11%(보건복지부, 2017)에 이르는 사회에서, 집에 돌아간 피해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생활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란 어렵다. 가족과 단절한 채 수개월~수년간 전국 각지의 쉼터를 옮겨 다니는 청소년들도 많다. 

문제는 쉼터를 불편해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부모와 떨어지고 싶은데도 의견을 무시하고 ‘부모와 잘 지내는 게 좋다, 먼저 연락해봐라’ ‘집에 돌아가’라고 종용하는 쉼터 분위기”, “‘원가정 방문 외 외박 금지, 통금, 휴대전화 사용 불가’ 등 규칙을 어기면 나가야 하는 것” “폭력으로 인해 예민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엄격한 생활 수칙을 따르며 살다 보니 여러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음” “곳에 따라 다르지만 입소 시 성관계 경험 여부, 음주·흡연 여부, 가족들 연락처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모두 적어서 제출해야 하는 것” 등이 이유였다. 쉼터 입소 경험이 있는 이들끼리 ‘리스트’를 만들어 ‘추천할만한 쉼터와 그렇지 않은 쉼터’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김 씨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쫓아내는 쉼터가 있다. 저는 아는 성소수자 동생들에게 ‘너네는 절대 티 내지 마’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쉼터 입소자 절반은 제 발로 쉼터를 나간다. 2016년 청소년쉼터에서 퇴소한 청소년 2만9256명 중 55.9%가 자발적으로 퇴소했다(여성가족부, 2017).

정 씨는 “그래도 쉼터든 뭐든 집을 떠나 살아갈 방법을 찾는 10대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피해자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학대당하면서도 가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어보기▶집 나와 잘살아보겠다는데…존중도 지원도 못 받는 여성들 http://www.womennews.co.kr/news/14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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