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국가’ 내세운 정부

정교한 개념 정의 필요

입법·재원 조달 위한

중장기 로드맵 마련도

 

 

정부가 지난 6일 사회정책 분야의 국가비전으로 ‘포용국가’를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살아야 한다”며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는 포용국가에 도달하기 위한 3대 비전으로, 사회통합 강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사회혁신능력 배양을 제시했다. 여기에 비전별로 3개씩의 세부 정책목표를 선정해 ‘9대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용국가와 관련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포용국가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적 포용국가는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며, 다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포용국가’의 정의에 대해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 배제와 독식이 아닌 공존과 상생을 모색하고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라고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사회 과학에선 개념이 실체를 가지려면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경제성장이란 개념은 일정 기간 동안 이룩한 국민경제의 증감분을 전년도와 비교해 산출한 경제 성장률로 경제 성장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은 ‘창조경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관료들이 창조경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 지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창조경제 실체는 사라지고 17개 시·도에 창조경제 센터를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당시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안철수의 새 정치 만큼 모호한 것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면 실효성 있는 정책 수단을 도출할 수 없다. 현 정부는 이런 실패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일부에선 정부의 포용국가론에 대해 “선의로 포장된 지옥의 길”, “소득주도 성장이 통하지 않자 인기영합의 포퓰리즘 어젠다를 들고 나왔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선 포용국가에 대한 정교한 개념 정의와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청와대는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의지가 과연 있는가. ‘사회 통합 강화’ 비전에 ‘공정사회를 위한 기회와 권한의 공평한 배분’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비전 속엔 ‘성평등 사회 질서 확립’ 등이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여 있고, 공직자로서 여성신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후안무치의 탁현민 행정관을 청와대가 감싸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성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민변의 여성인권위원장으로서 ‘호주제 폐지’ 소송을 이끌었고 지속적으로 여성 인권 증진에 앞장선 진선미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되었다. 적재적소에 임명된 가장 잘 된 인사 중 하나로 보인다. 진 의원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에 임명되면 일차적으로 소라넷을 잡은 패기로 탁현민에 대한 응당의 조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 임금, 승진, 육아 등에서 차별받고 있는 뒤틀리고 왜곡된 구조를 개선하는 데 장관직을 걸어야 한다. 단언컨대, 성평등 진전 없는 포용은 없다.

셋째, 입법과 재원 조달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이 마련되었는가. 올해 정부는 복지 예산으로 162조2000억원(34.5%)을 배당했다. 복지는 현 정부와 진보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 정부의 정책은 2022년 문재인 정부 퇴임 때까지를 기준으로 책정된 것이 많다. 그러나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입법 과정을 거치고 적절한 재원 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야당을 포용하는 담대한 협치가 포용국가를 안착시키는 첩경이 될 것이다. 포용국가의 핵심 전략으로 ‘포용지치’와 ‘포용지참’의 결합이 거론된다. 전자는 리더가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고, 후자는 국민이 포용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여성의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제고시켜 여성이 성평등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실질적인 성평등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포용국가의 핵심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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