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주최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

『두 입술』·‘들꽃모임’ 활동한

‘영페미’들 한자리에

‘메갈세대’와 경험 나누며

연대 필요성 공감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에서 참가자들이 기억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에서 참가자들이 기억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1990년대 페미니즘 활동을 펼친 이른바 ‘영페미니스트’(Young Feminist·이하 영페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센터장 로리주희)가 마련한 행사다.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혁신파크 안 공유동 6층은 웃음소리로 들썩 거렸다. 반가움이 묻어나는 얼굴들 가운데, 90년대에 ‘태어나’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이들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이날은 대학 여성주의 자치언론 『두입술』, 대학 여학생 모임 ‘들꽃모임’, 페미니스트 카페 ‘고마’의 주역인 이영희(노무사), 전양숙(회사원), 조혜련(성평등교육기획자)씨가 패널로서 얼굴을 마주했다. 선배 세대로서 이들과 소통하며 함께 활동한 이숙경 영화감독(줌마네 대표)이 사회를 맡았다.

영페미는 윗 세대와는 운동 방향과 방식은 물론 옷차림마저 달랐다. 법 제정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일상의 혁명을 부르짖었고 대학 자치언론과 웹진을 창간하고 축제를 열어 여성주의 담론을 형성하고 대중성을 넓혀갔다. 진보적이라고 말하던 운동권의 가부장성을 공론화한 것도 이들이다.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점에선 이른바 ‘메갈 세대’(메갈리아를 계기로 페미니즘에 눈 뜬 세대)들과 다른 듯 닮았다.

『두입술』은 영페미가 만든 대표적인 자치언론이다. 98년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연애’를 주제로 한 창간 준비호와 ‘독립’을 주제로 한 창간호를 출발로 일상의 이야기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담아냈다. 잡지 이름은 루스 이리가라이의 책 『우리의 입술이 함께 말할 때』에서 따왔다. “불편함과 부당함에 대해 다물고만 있던 두 입술을 열어 말함으로써 전복적 일상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여성주의 기치를 내건 연세대학교 10대 총여학생회의 자치모임 활성화 공약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총여학생회장이 여성학 연구자 김신현경이다. 운영비는 총여학생회의 지원과 학생들이 ‘발로 뛰어’ 따낸 광고비로 마련했다.

잡지 창간 부터 참여했던 이영희씨는 ‘여성문제를 고민하는 사회대 공동체 비욘드’(공부모임)을 통해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다고 했다.

“학생운동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기에 대학에 들어와서 남자들과 대화를 하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게 된거죠. 그때 페미니즘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우리 공부해보지 않을래’ 하며 페미니즘을 접했어요. 공부를 하면서 나를 표현할 언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시작한 게 자치언론이에요. 『두입술』은 우리의 언어를 갖고 싶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어요.”

97학번인 전양숙씨는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가 여학생이 전체 학생의 40%를 넘어 앞으로 동문의 약해질 것이라고 쓴 글을 보며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신문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연세문화’에서 활동했지만, “내가 관심이 있던 먹고 사는 문제에 쓰고 싶어 당시 편집장을 통해 잡지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조혜련씨는 이화여자대학교 92학번으로 당시 ‘은초’라는 별명으로 여성주의 활동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으로 총학생회 산하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한 그는 1996년 ‘고대생 이대 축제 난입 폭행 사건’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당시 사건은 이화여대 대동제 때 고려대 남학생 400여명이 이대에 난입해 폭동을 부려 이화여대 학생이 팔이 부러지는 부상까지 입은 사건이다. 고대생들의 이대 대동제 난입은 1985년부터 ‘의례적’으로 이어져왔다. 이대 여성위원회는 96년 사건을 계기로 이를 ‘집단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공론화했다. 당시 여성위원장이던 조씨는 “당시 교수님들도 함께 분노하며 외부에 이 문제를 알렸고, 우리도 고려대에 공식 사과와 가해 학생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며 “가해학생을 방학 중 유기정학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10년 넘게 이어져온 학교 난입과 폭동이 문제라는 점을 고대 측에 인식시켰고 이후 그러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각 대학 여성 대표들이 모인 ‘들꽃모임’이 생겨났다.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에서 참가자들이 기억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에서 참가자들이 기억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학교가 달랐던 세 사람은 이화여대 근처에 위치한 카페 ‘고마’를 통해 교류하며 지냈다. ‘고마’를 만든 이숙경 감독은 연배로는 영페미들과 10여년의 차이가 나지만 누구보다 영페미 활동을 열심히 지원했다. ‘고마’는 영페미들이 모여 먹고 사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행사를 기획하고 문화 행사를 열며 울고 울었던 ‘사랑방’ 같은 존재였다.

이날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은 청중 가운데 ‘영영페미’ 혹은 ‘넷페미’ 또는 ‘메갈세대’로 불리는 20대 여성들도 다수였다.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활동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한 여성은 “가장 고민은 함께 일할 동료를 찾는 일”이라며 “‘페미니스트 물’ 자체도 작지만 무엇인가 해보려다가도 생계 때문에 흩어지게 돼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전문직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여성이 자립하기 위해선 노동과 자본주의를 뺄 수 없어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다 잠시 쉬고 전문직 시험을 준비했다”며 “선배들은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삶과 직업을 접목시키며 사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날 동창회는 오래된 기억을 꺼내 조각보처럼 이어붙이고 서로 닿지 않을 것 같았던 페미니스트 선후배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성평등한 사회환경 조성을 목표로 점 단위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활동가, 청년활동가, 여성단체에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성평등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공유동(15동) 6층에 전용면적 315㎡ 규모로 조성됐으며, 교육장, 상담실, 코워킹존. 인큐베이팅룸, 휴게공간으로 구성됐다. 이용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www.seoulgenderequi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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