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서 ‘윤석남’전

팔순 앞두고 40여년 만에

자신의 모습 화폭에 담아

민화 특징 담은 채색화도

 

작업실을 배경으로 그린 자화상. 윤석남, 자화상, 한지 위에 분채, 137x93cm, 2018 ⓒ학고재
작업실을 배경으로 그린 자화상. 윤석남, 자화상, 한지 위에 분채, 137x93cm, 2018 ⓒ학고재

‘어머니’를 주제로 여성 문제를 다룬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 윤석남(79) 화백이 40여년 만에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어머니와 역사적 여성 인물을 화폭에 등장시키며 ‘모성’에 주목했던 작가는 그들의 위대함과 감사를 기리는 작업을 꾸준히 펼치면서도 미완의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고 했다. 여든이 돼서야 정작 자기 자신은 작업 뒤에 서 있었음을 깨달았다. 10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 ‘윤석남’은 처음으로 타인이 아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 마주한 전시다.

전업주부이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불혹의 나이에 처음 화구를 잡았다. 13명의 여성작가들과 서울 역삼동에 첫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연스레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어머니를 시작으로 여성과 모성, 생명과 자아정체성을 작품의 화두로 삼고 작품 활동을 통해 여성의 억압된 삶을 고발하고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핚 맥락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 겪는 불평등에 대항해 집단적읶 목소리를 내는 여성미술가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여성신문 창간에 참여하거나, 여성 문제를 탐구하는 등 페미니즘에 대해 배워나갔다. 여성미술가로서의 의식과 실천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윤석남이 이 시기에 발표핚 작품들은 노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민중미술로서도 중요하게 읽힌다.

윤석남은 이번 전시에 자신의 자화상을 다수 선보인다. 그는 자신의 모습과 이야기를 채색화로 담았다. 채색화를 선보이는 것 또한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군더더기 없는 순수하면서도 담대한 색이 돋보인다. 윤석남은 민화에 자주 나오는 책가도와 함께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과 함께 대범한 자세로 앉아있기도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윤석남 자신의 당당한 모습이 돋보인다.

최근 작가는 민화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화려한 색채 사용으로 눈과 마음에 즉각적 호소를 불러으으키는 민화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무 위에 여성들의 모습을 묘사해온 작가의 새로운 시도다. 그는 “민화가 버려진 보물 같다”며 “서민들의 소소한 생활과 감정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설치 미술 작품인 ‘핑크룸Ⅴ’ ⓒ학고재
설치 미술 작품인 ‘핑크룸Ⅴ’ ⓒ학고재

이번 전시에서 윤석남은 착색화 신작과 함께 2018년 버전의 <핑크룸 V>를 포함한 대형 설치 2점을 선보인다. <핑크룸 V>는 1996년에 내보인 첫 번째 <핑크룸>의 2018년 버전이다. 학고재 신관 지하 2층 공간에 맞춰 새롭게 설치했다. 핑크를 강요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에 맞서는 일종의 사회적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다. 늘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갈증을 느긴 작가는 여성의 삶에서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현실과 자유를 추구하는 갈등의 양상은 전투적인 형광 핑크색으로 표출된다.

작가가 기전에 사용하던 매체를 뛰어넘는 시도를 선보이는 신작들은 현역 작가로서 윤석남의 힘을 보여준다. 여성 미술가로서의 셀 수 없는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꾀하며 긴 시간 작품 활동을 해낸 윤석남의 모습에서 허난설헌, 이매창 등 그가 작업한 역사적 여성들과 일맥상통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