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코지 판 투테’ 프레스콜 전막공연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9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코지 판 투테’ 프레스콜 전막공연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가 오는 6일부터 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가극)다. 18세기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원래의 작품은 두 남자가 자매 사이인 약혼녀들의 정절을 시험하고, 여자들은 끝내 유혹에 넘어가 사랑하는 남자가 뒤바뀌면서 소동이 일어나지만 결국 원래의 제짝과 결혼해 행복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정서로 보면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어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에 힘입어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원작과는 달리 1950년대 대도시의 호화 부티크를 배경으로 한 유쾌한 연애 사기 소동으로 꾸며졌다. 

 

9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코지 판 투테’ 프레스콜 전막공연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9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코지 판 투테’ 프레스콜 전막공연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코지 판 투테’ 공연을 계기로 요즘 국립오페라단의 행보를 보면 자못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코믹하고 행복한 결말의 오페라를 줄지어 선보이고 있어서다. 눈길을 끈 최근 움직임의 첫 작품은 지난 6월에 올려진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죽은 은행가 남편으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젊은 아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싸움과 해프닝을 그린 흡사 뮤지컬 같은 희가극이었다. 이어서 ‘코지 판 투테’가 무대에 올려지고 다음 달에는 엥엘베르트 훔퍼딩크가 작곡한 해피엔딩의 가족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공연한다.

 

흡사 뮤지컬 같은 코믹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의 한 장면. 거부가 남긴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싸움과 한바탕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흡사 뮤지컬 같은 코믹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의 한 장면. 거부가 남긴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싸움과 한바탕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오페라 레퍼토리로는 비극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비제의 ‘카르멘’,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나 푸치니의 ‘라보엠’ 같은 작품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제작되는 오페라 상위권 목록에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등이 끼어들지만, 여전히 비극이 지배적이다. 그 점을 고려하면 올해 중·후반을 해피엔딩의 세 편 오페라로 채운 국립오페라단의 프로그래밍은 파격적이다. 

사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 수년간 복수(複數)의 예술감독 조기퇴진, 후임 감독 선임을 둘러싼 문제 등 여러 상황이 꼬이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지휘자로 활동해오다 지난 2월 부임한 윤호근 예술감독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올해 시즌에 제작하기로 한 작품은 ‘헨젤과 그레텔’이 유일하다. ‘유쾌한 미망인’과 ‘코지 판 투테’는 그의 부임 전에 이미 프로그래밍 방향이 설정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시즌 작품으로 편입됐다. 

그런데도 국립오페라단이 최근 일련의 작품 구성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읽힌다. 오페라 관객개발이다. 특히 ‘헨젤과 그레텔’을 내년에도 연말 레퍼토리로 한다는 계획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감지된다. 국립오페라단은 발레 단체들이 연말에 ‘호두까기 인형’을 일제히 내놓는 것 같은 고정 레퍼토리가 없다. 윤호근 감독이 오페라 관객개발을 위해 중시하는 개념은 오페라를 어린이 때부터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구에서처럼 어린이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오페라를 보게 되면 어른이 된 후에도 그 장르에 대한 친숙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와 내년 작품으로 ‘헨젤과 그레텔’이 선정된 중요한 배경이다.

그뿐 아니다. 국립오페라단의 내년 시즌을 여는 작품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이 작품 역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인기물 중 하나이다. 시즌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이처럼 친숙감을 느낄 수 있는 오페라로 구성하고, 그 중간에는 기존 오페라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면서 시기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채우겠다는 것이 국립오페라단의 구상이다. 2019 시즌 프로그램에는 한국 초연의 대작으로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작품이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창작오페라, 그리고 ‘파르지팔’과 ‘발퀴레’ 등으로 구성되는 '바그너 갈라'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올해 국립오페라단이 우연찮게 내놓은 파격적인 희가극과 가족오페라의 조합 프로그래밍이 오페라 관객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해 본다.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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