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가정폭력] 

가정폭력에 관한 흔한 오해들

가정폭력은 ‘집안 일’이 아닙니다. 인권 문제이자 한국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잘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여성신문은 페미니즘 관점으로 가정폭력에 관한 흔한 오해들을 다시 짚어보고, 어릴 적 피해를 겪은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8월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사전 신청자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여성가족부 ‘보라데이’ 캠페인의 하나로 개최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월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사전 신청자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여성가족부 ‘보라데이’ 캠페인의 하나로 개최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권은선 영화평론가,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모임 (준)대표·성공회대 교수, 변미혜 함께걷는아이들 활동가, 서민 단국대 교수,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을 토대로 가정폭력에 관한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부수고 때려야만 가정폭력은 아니다

“아버지와 남동생이 어머니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왔습니다. 그들이 제게 직접 폭력을 행사한 건 아니지만, 저는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가끔 그들을 살해하는 꿈을 꿀 만큼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정말 사랑했지만, 제가 어릴 적부터 업무 등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참다못한 저는 중학생이 된 후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고, 손찌검이나 욕설을 한 적도 없고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우당탕탕’만 가정폭력이 아닙니다.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폭력’이 가장 흔한 가정폭력의 형태입니다. 2004년부터 3년마다 실시되는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모아 보니, 가장 많이 발생한 게 정서적 폭력이었습니다. ‘가정폭력’ 개념조차 희박했던 2004년에도 정서적 폭력을 겪었다는 응답률이 1위였습니다. (조주은)

술·정신병 탓? 가정폭력은 이성적인 행위다

우리 사회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쉽게 ‘병자’ 취급합니다. 가해자가 스스로를 정신병자 취급하기도 하죠. ‘술이 원수’라고도 합니다. 그럼 가해자들이 술을 끊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가정폭력이 해결될까요? 그런 사람이라면 회사에서도 자기 상사를 두드려 패야겠죠? 그러나 그런 일은 보통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해자들은 회사에선 잘만 일하다가, 집으로 와서 아이나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죠. (조주은)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크콘서트가 열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크콘서트가 열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자라면 ~해야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가정폭력 부른다

친족 간 폭력 발생률이 높은데도, ‘가족이니 참아야 해’ ‘어떻게든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폭력’이 아닌 ‘부부싸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가정폭력은 소위 ‘취약가정’에서만 일어난다는 고정관념도 존재합니다. 가정폭력은 ‘위기가정’에서만 발생하지 않아요.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나죠. 그런데 가정폭력 경험자는 ‘무기력하고 순종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피해자는 ‘난그렇지 않아’라는 생각, 자존감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폭력을 인정하기도 입을 열기도 힘들어합니다.

‘바깥은 위험해, 집은 안전해’라는 믿음, ‘여자라면 ~해야지’ 같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가정폭력을 강화하고 은폐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죠. 아내에게 ‘반찬이 왜 이 모양이야? 집안일을 왜 이렇게 해? 애를 왜 이렇게 돌봤어?’라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을 떠올려 보세요. ‘여성’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과 연결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식이죠. 젠더감수성이 낮고 성역할 고정관념이 굳건한 집안에서 성소수자들이 가정폭력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사회의 젠더감수성이 가정폭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셈이죠. (김순남)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고 약자를, 제일 만만한 아내를 짓밟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그런 폭력이 사회적, 법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여자가) 맞을만하니까 맞았겠지’ 식이고. 신고해도 중한 벌을 받지 않죠. ‘때려도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서민)

경제적 보상이 없는 (가사)노동은 여성의 역할,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노동은 남성의 역할이라는 식의 성별 분업도 원인입니다. 집안에서도 여성과 남성 간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죠. ‘내 마누라, 내 자식 왜 맘대로 못하냐?’면서요. (조주은)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권은선 영화평론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권은선 영화평론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김순남 성공회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김순남 성공회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정폭력, ‘내가 노력하면 될’ ‘집안일일 뿐’?

권력관계에서 약자들은 ‘내가 더 노력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가정폭력은 약자가 무언가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관계는 안 바뀌어요. 자기 삶이 바뀌죠. 오히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할 책임이 왜 여성에게, 약자에게 지워지는지 생각해 봐야 해요. 우리 사회엔 ‘내 삶과 인권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인식이 필요해요. (김순남)

사람들이 BMW 한 대가 불타면 그렇구나 하는데, 세 대가 불타면 ‘내 차는 괜찮을까?’라며 관심을 가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정폭력은 통계가 있어도 사람들이 크게 관심 갖질 않죠. 여성이 주로 피해자라는 통계가 있어도 가해 남성 편을 듭니다. 모 연예인이 야구방망이로 남편에게 맞았대도 ‘맞을 만했겠지’라고 하거나 ‘그 여자 바람 피웠대’라는 루머가 퍼지기도 하죠. 남자로서 부끄럽습니다. 남자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해자는 ‘쓰레기’라고 여기고, 친일파를 대하듯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서민)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변미혜 함께걷는아이들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변미혜 '함께걷는아이들'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서민 단국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서민 단국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조주은 입법조사관이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보라! 가정폭력은 왜?’ 토큰콘서트가 열려 패널 간 토크에서 조주은 입법조사관이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정폭력을 겪은 나, 가해자가 되진 않을까?

‘폭력의 대물림’ 담론에 너무 쏠리지 말고 내면의 힘을 기르길 바랍니다. 저도 한동안 가정폭력 피해자였어요. 학창시절 내내 공포에 시달렸죠. ‘난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자신을 성찰하다 보면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조주은)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을 극복해야 해요. 내가 취약한 존재라고 해서 내가 폭력을 대물림하게 되는 건 아니죠. 오히려 페미니즘은 내가 불완전하고 취약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나와 타자와의 연결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고요. (김순남)

제 주변 활동가들 중에도 가정폭력 피해생존자들이 많아요. (변미혜)

가정폭력 대물림은 하나의 신화예요.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폭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권은선) 

가정폭력이 대물림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피해를 당했다고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가해자들을 살펴보니 가정폭력을 겪은 경우가 있더라는 겁니다. 인과관계가 달라요. (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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