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포럼이 주최하는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토론회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려 이정미 시민정치포럼 공동대표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시민정치포럼이 주최하는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토론회'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려 이정미 시민정치포럼 공동대표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미투 이후 정치세력화 가능성은?

신기영 “미국 2017 미투 이후 2018 중간선거

1991 아니타힐 사건 후 1992 여성의해 유사”

“매키넌, 동등한 발화주체로 인정될 때

가부장적 권력체제에 변화 시작될 수”

이정미 “반여성주의 세력은 뭉치고,

여성주의 세력은 분절”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Metoo)이 여성의 정치 세력화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24일 시민정치포럼(공동대표 홍익표·이정미·진선미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 토론회에서 신기영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수는 미투 운동이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신 교수는 법여성학자인 캐서린 매키넌의 글을 인용해 법제도만으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일상생활에서 근절하기 어려운 이유와, 미투운동이 이같은 가부장적 권력체제에 어떻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설명했다.

우선 성차별이 발생하는 핵심적인 이유로 “여성인 피해자를 의심하고 인신공격하면서 가해자의 지위, 가해자가 입을 정신적 피해 및 커리어의 손실과 명예훼손이 피해자가 입은 어떤 피해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맥키넌의 주장이다.

“가해자의 말이 조금이라도 의심받기 시작하는 경우는 같은 가해자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유사피해자가 최소한 3~4명이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매키넌은 이를 두고 여성은 1/4의 신뢰의 가치밖에 없는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투운동은 여성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성폭력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이며, 수많은 여성들이 동시에 성희롱을 말하고 그것이 공유되고 확인되면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매키넌은 여성들이 하는 말이 신뢰되기 시작하고 말하는 여성들이 발화주체로서 동등한 가치가 인정되면 가부장적 권력체제에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보았다”고 했다.

신 교수는 미투로 자신의 목소리를 얻은 여성들이 가해자 폭로와 해임만으로 그치지 않는 더 큰 변화를 위한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여성들이 법제도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법제도를 제정하는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2018년 중간선거에서 특히 하원에 출사표를 던지는 여성이 476명으로 사상최대의 수를 기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시민정치포럼이 주최하는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토론회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민정치포럼이 주최하는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토론회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러면서 신 교수는 2018년과 여성이 선거를 통해 미국 정치에 대거 진출해 ‘여성의 해’로 불린 1992년의 공통점을 찾았다. 1992년은 미국 대법관 후보인 클라렌스 토마스의 상원청문회 때 젊은 흑인여성의 아니타 힐이 성희롱을 증언했던 이듬해다. 신 교수는 “이 청문회의 질의 응답과 아니타 힐의 증언이 정치참여에 대한 필요성을 여성들에게 일깨웠다. 청문회의 과정을 지켜본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정치현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다음해에 대거 도전해 상하원의 여성 의원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2016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이듬해 시작된 미투운동이 어떻게 여성들이 정치세력화에 대한 관심을 촉진시키고 2018년 중간선거로 이어졌는가를 설명했다.

“미투운동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상황은 성폭력과 성차별의 온존이 가부장적 남성권력, 그 중에서도 이 남성권력의 정점을 이루는 정치영역과 맞닿아 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배경이 되었다. 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여성차별의 문제들은 많은 여성들에게 2018년 의 중간선거에 도전하게 하는 자극이 됐다. 정책을 결정하는 테이블에 여성들이 직접 앉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많은 여성들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한국에서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실시된 6월 지방선거에서 미투 관련 문제가 쟁점이 되지도 않았다”면서 “미투운동이 가부장적 정치권력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 그 변화로 이어져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질문을 던졌다.

김은희 “아재지도 문제 제기...미투 이후 달라졌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젠더 이슈 자체의 언급이나 평가가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 변곡점에서 미투라는 문제 제기를 정치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며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소개하는 ‘아재 지도’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함께 보고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에 “미투를 통해 여성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게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민주진보’ 진영의 남성정치가 마주한 숙제는 엄중하다. 기존 정치권력은 다시 광장에 나선 여성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비판했다.

윤지소 “미투, 정치적 행동 결심 계기 제공”

윤지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투가 성과를 이룬 미국과 달리 이슈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에서 미투운동이 영역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특히 정치영역에서만은 여성이 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2018년 미투가 촉발시킨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관련해서는 미투의 확산과 여성 정치 후보들의 부상은 무관하지 않고, 많은 여성후보들이 미투 운동을 선거 캠페인의 핵심으로 삼은 사례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트럼프가 조성한 여성혐오적 정치상황이 미투 운동보다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봤다. 또 “1992년 ‘여성의 해’에도 힐의 사례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 오픈 시트(정치인인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선거구)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미투로 인해 어떤 조직이든 여성이 권력에서 소외되면 성희롱·성폭행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이해가 확산됐으며,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행동을 결심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주은 “여성 대표성 증진, 성별임금격차 해소 중요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앞으로 남은 과제는 여성 대표성 증진과 성별임금격차 해소라고 했다.

조 입법조사관은 “미투운동이 미투운동으로 마무리돼서는 완전한 해결책일 수 없다. 여성이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세상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전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권력을 나눠가질 때 가능하다. 즉 전 사회적으로 성평등이 구조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면서 특히 “앞으로 미투운동은 더 정치세력화돼서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진출하고 경제력을 더 많이 확보해서 임금수준 차이로 인한 경제적 약자인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청한 이정미 의원은 미투의 과제를 정치권에서 풀어나가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든든한 사회적 권력이 정치의 뒷받침이 돼야 하는데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 어긋나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반여성주의적 세력들은 강고하게 뭉쳐서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데, 여성주의 세력은 잘게 분절돼서, 모아 나가는 것도 안 된다”면서 “정치권력 안에서도 이제 그것을 좀 더 큰 틀 안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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