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은 지난 19~20일에 걸쳐 지역의 미혼모 관계자들을 만나 미혼모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듣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정책을 담당하는 부산시 여성가족과와 미혼모입소시설 중 한곳인 사랑샘, 미혼모지원단체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관계자, 양육미혼모 당사자 등이 개별 인터뷰에 참여했다.

이들은 미혼모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경제적 자립을 꼽았다.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에게 발전의 기회가 되고 자아실현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희 사랑샘 원장

“어쩔 수 없이 기초생활수급자 선택

경제적 자립 돕는 방향으로 법 개정돼야

“미혼모의 자립을 위해선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해요. 이를 위해 다양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부 제도 속에선 어쩔 수 없이 엄마들이 자립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요. 엄마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보다 촘촘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박성희 사랑샘 원장은 무엇보다 엄마들의 ‘자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랑샘에서 퇴소 전 미혼모들에게 입소 기간 동안 모은 일종의 자립지원비(최소 300만원~500만원)을 지급하고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는 이유다. 자립지원비는 대부분 미혼모들의 주거비로 쓰인다. “자립지원비 말고도 사랑샘에서는 엄마들에게 매달 40만원을 지원해줘요. 아이 기저귀, 분유, 엄마 용돈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죠. 물품이 아닌 현금으로 주는 이유는 엄마들이 자립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연습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샘은 아동을 양육하는 미혼 엄마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건강하게 자녀를 양육하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이다. 만 24개월 미만의 영유아를 양육하며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렵지만 양육과 자립의지가 확고한 미혼모들이라면 입소할 수 있다. 양육계획서와 입소계획서를 내고 기본 2년, 연장 1년까지 최대 3년 이용이 가능하다. 총 10세대가 이용할 수 있으며, 현재 6명의 엄마가 이곳에서 생활 중이다. 대한사회복지회가 2015년 7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미혼모 일자리 저임금 문제와 기초생활수급비 등이 맞물린 상황에서 자립 의지가 꺾이기도 한다. 취업 교육을 통해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았지만, 기초생활수급비와 비슷한 액수를 벌거나 조금 더 많은 액수를 버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기초생활수급자’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한부모가족지원법과 중복지원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전국 한부모 가족 255가구를 대상으로 파악한 2015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한부모 가족의 41.5%가 기초 생활 보장, 차상위 가구 등 저소득층이었다.

박 원장은 “이는 엄마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옳지 않은 선택”이라면서도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미혼모들은 자립을 위한 노력보다 수급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미혼모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탈수급’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엄마도 있다. “A엄마는 얼마 전 한 대기업 계열사에 취업했어요. 한 달에 230만원을 버니까 자연스레 ‘한부모’에서도 탈락하더군요. 그런데도 자립 의지가 있어 하루 12시간씩 힘들게 일하면서 버티더라고요. 하지만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박 원장은 미혼모 통합지원서비스의 부재도 문제로 꼽았다. “예를 들어 긴급복지지원서비스를 받을 정도로 위급한 상태의 엄마가 미혼모 시설로 연계될 수 있도록 안내가 필요한데 그게 안 되는 거죠. 통합지원서비스가 없어요. 일본은 ‘한부모 통합정책’으로 잘 운영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미혼모 정책으로 분리해놓고 미혼모에 대한 편견, 사회적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박 원장은 미혼모 예방의 관점에서는 성교육의 중요성과 미혼부의 법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일부 국가에선 남자 쪽에서 무조건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도 피임에 관심을 갖고 이중피임을 하기도 한다”며 “15세 이상이 지나면 학교에서 무료로 콘돔을 지급하는 북유럽 국가처럼 한국도 교육 현장에서부터 정확하고 올바른 피임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에 위치한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 사랑샘 ⓒ사랑샘
부산시에 위치한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 사랑샘 ⓒ사랑샘

부산 거주 시설 밖 미혼모

“미혼모 자립 의지 꺾는 국가…

법정 한부모소득기준 높여야” 

미혼모들 또한 저임금 일자리와 기초생활수급비의 굴레 속에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부산에 거주하며 27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황하나(26·익명)씨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해야 국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해도 기초생활수급자와 한부모 법정소득 기준에서 탈락한다”며 “법정 한부모소득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월 157만원으로 오른 데 비해 한부모선정소득 기준은 월 148만원(중위소득 52%)으로 고정돼 있다. 황씨는 “이런 상황에서 미혼모들은 4대 보험이 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지원금을 받는 길을 택한다”며 “이는 엄마들의 자립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1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미취학 자녀가 있는 10~40대 여성 3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이들의 월평균 소득액은 92만3000원이었다. 기혼 여성 한 명당 월평균 자녀양육비 지출액은 65만8000원임을 고려할 때, 미혼모는 자녀양육에만 총소득의 70%를 넘게 부담하는 셈이다. 또 61.6%는 근로소득이 없다고 답했다.

시설 밖 미혼모인 황씨는 미취업자임에도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기 때문에 현재 18만원의 지원비를 받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만 24세의 나이가 지나면 15만원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아이 양육비와 생활비를 합쳐 월평균 100만원이 넘게 든다.

황씨는 아이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은 정서적인 안정감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택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이어 “한부모들이 안내받는 국비 지원 취업성공패키지 또한 대부분 자립을 위해 엄마들이 정말 원하는 일자리 교육이 아니”라며 “미혼모들은 제빵이나 바리스타 간호조무사 교육 등 수급자로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자리 교육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37개월의 뇌병변 장애 아들을 둔 미혼모 최지원(22·익명)씨는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해주는데 왜 힘들게 일하려고 하느냐’는 말을 들어 속상했다”며 “미용 학교를 졸업했다. 나중에라도 미용사로 근무하면서 수급비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면 꼭 일하고 싶다”고 자립 의지를 나타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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