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미투 외친 김은희씨

테니스 배우던 초등 4학년

코치에게 상습 성폭력 당해

17년 뒤 성인 돼 소송 시작

대법서 가해자 10년형 확정

홀로 시작한 법정 투쟁

경찰·스포츠인권센터

해바라기센터 도움 안줘

운동선수 한정된 진로 등

#미투 확산 어려운 구조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 국회토론회가 열려 김은희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 국회토론회가 열려 김은희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은희(28)씨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그 일’은 2001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벌어졌다. 열한 살 어린 아이였던 그는 17년 뒤 성인이 돼 가해자를 법정에 세웠다. 그렇게 홀로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꼬박 2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승리’했다. 지난 7월 26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2심에서 가해자에게 선고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살던 가해자를 감옥으로 보냈고, “증거가 부족해 어렵다”는 경찰에게 몸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고소장을 써달라”는 부탁에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상담사의 도움 없이 김은희씨 홀로 얻어낸 결과였다. 그는 “그동안 외로웠다”고 했다. 정부기관과 체육협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를 물심양면 도운 건 여성인권단체인 광주여성의전화가 유일했다. “무의식 중에 수면제 20알을 한 번에 털어 넣을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지만 김은희씨는 “결코 포기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을 포기하고 싶어 제가 먼저 가해자와 합의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절 위해 진술서를 써주시고 제가 전화를 걸면 한 시간 넘게 통화해주시며 절 도와주셨던 분들이 있어서 였어요. 소수였지만 제 곁에 있는 분들 덕분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은희씨는 지난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하여’ 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법정 투쟁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성폭력 신고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다.

‘조두순 사건’ 보고 고소 결심

17년이나 지났지만 ‘그 일’은 잊히지 않았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01년 테니스를 배우던 초등학교 4학년 어린 아이에게 그 일이 벌어졌다. 테니스장에 있는 합숙장 락커룸, 지도자 관사, 전지훈련장에서도 피해는 이어졌다. 이듬해인 2002년 한 학부모가 김모 코치가 아이들을 성추행한다는 민원을 제기하면서 처음 문제가 불거졌다. 교감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김씨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코치가 성추행을 했느냐”는 질문에 “네”라는 한 마디만 겨우 했을 뿐이었다. 그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코치로부터) 너무 많이 맞았고 폭언도 심했”고, “뽀뽀라는 단어 외에 스킨십 관련 단어를 알지 못한” 열한 살 아이였다. 부모님에게조차 그 이상을 말하지 못했다.

10여년이 흐른 2012년 어느 새벽녘. 대학교 3학년이던 그는 TV 뉴스에서 ‘조두순 사건’으로 법이 개정됐다는 사실을 접했다. 성인 남성이 8세 아이를 성폭행하고 심각한 상해를 입힌 이 사건으로 아동 성범죄의 심각성과 미비한 양형 기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중지하는 법이 새롭게 시행됐다. 김씨는 곧바로 뉴스에서 소개된 ‘1366’에 전화를 걸었고, 이곳에서 연결해준 전북성폭력상담소에서 처음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찾아간 경찰서에선 “너무 오래된 일이고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어렵게 연 마음의 문을 또 다시 닫아야 했다.

4년이 흘렀다. 2016년 5월 어느 토요일.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고 준비하던 그때 ‘그’를 맞딱 뜨렸다. 17년 전 ‘가해자’가 다시 김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직도 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렸다. 김씨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30분을 울었다. 그날 이후 사흘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였다”고 떠올렸다.

가해자를 마주한 그 순간, 그리고 여전히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다시 고소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제가 고소를 안 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온다면 제 책임일 거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결심을 했어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 국회토론회가 열려 김은희씨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 국회토론회가 열려 김은희씨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무도 피해자 편에 서지 않았다

가해자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하고 법정 투쟁을 시작한 김씨는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모두 혼자 준비해야 했다. 광주여성의전화에서 도움을 줬지만 증거를 찾고 증언을 한 만한 사람을 찾아 부탁하고 사비를 들여 변호사를 고용해 고소장을 쓰는 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조두순 사건’부터 ‘도가니 사건’ ‘섬마을 사건’ ‘나주 아동 성폭행’ ‘도봉구 집단 성폭행’ 등 알려진 성폭력 사건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재판 전략을 짰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가진 정보가 없어서 소송에서 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듣고 정보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며 “내가 꼭 승소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 기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증’ 하기 위해선 증언이 중요하다. 김씨는 당시 테니스부원들에게 연락해 어렵사리 증언을 부탁했고 동료들과 초등학교장과 후배 어머니, 의사와 임상심리사 등도 재판에 나와 증언을 해줬다.

그는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정부기관과 체육협회는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고소장을 쓰고 곧바로 해바라기센터와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각각 이메일로 신고했다. 담당자는 열흘이 지나서야 배정됐다. 신고 접수조차 어려운 구조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종용하는 시스템”이라고 김씨는 비판했다. “누구를 위한 기관이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요?”

김씨는 체육인을 대표하는 대한체육회가 스포츠인권센터를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체육계의 폐쇄성,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가해자와의 복잡한 이해관계, 선수의 진로의 다양성 부재, 인식 변화의 뒤쳐짐, 처벌 이후 관리 미흡 등 ‘체육계 특수한 구조’를 해체해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1심에서 9차례 재판 끝에 가해자에게 10년형을 선고했다. 2심에서 7회 재판 끝에 가해자 측 항소가 기각됐고, 대한테니스협회는 판결이 나자 가해자를 영구 제명시켰다. 지도자 길을 걷고 있는 김씨는 테니스 코치이자 주변의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3명의 피해자를 곁에서 돕는다. 하지만 그 역시 아직도 광주여성의전화 지원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김씨는 법정 투쟁을 이어가며 헌법 제10조를 몇번이고 되뇌었다고 했다. 법에도 명시된 이 문장이 제발 현실에서도 실현되기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누군가 피해자 곁에서 도움을 주기를 그는 아직도 되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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