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권통문’ 120주년

서울 북촌 여성들 뜻 모아

교육권·참정권·노동권 주창

사학자 윤정란씨 

신한은행 백년관 자리 주장

“한국 여성운동 1번지…

역사유적지로 지정해야”  

 

사학자 윤정란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이 서울 중구 삼각동 117번지, 신한은행 백년관 앞에서 지적도를 들어보이고 있다. 윤 연구원은 이곳이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선언 장소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사학자 윤정란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이 서울 중구 삼각동 117번지, 신한은행 백년관 앞에서 지적도를 들어보이고 있다. 윤 연구원은 이곳이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선언 장소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이 올해 선언 120주년을 맞는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 사는 여성들은 여권통문을 통해 직업권, 교육권, 참정권을 주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 찬양회를 조직했다. 이 같은 사실이 ‘독립신문’ ‘황성신문’에 발표되자 400여명의 지지자들이 찬양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 여성운동의 출발로 여겨지는 여권통문이 선언된 장소가 120년 만에 처음 확인됐다. 여권통문 선언과 찬양회를 조직한 장소는 이시선(李時善) 집으로 알려졌다. 이시선은 자신의 집에 학교를 세워 학생들에게 근대교육을 가르친 교사였다. 사학자 윤정란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은 이 사실을 근거로 지난 두달 간의 본격적인 조사 끝에 8월 중순 이곳이 오늘날 서울 중구 삼각동 117번지, 신한은행 백년관 자리라는 것을 최종 확인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윤 연구원은 “지난 2015년 처음 여권통문 선언과 찬양회 조직 장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당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은행 건물인 우리은행(서울 명동 위치) 뒷편으로 추측했다”며 “최근 여권통문 발표 120주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조사한 끝에 현 신한은행 백년관 자리라는 것을 확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먼저 국사편찬위원회를 찾아 대한제국 호적표를 들췄다. 호주 이름, 생년, 호구수와 집의 규모 등이 기록돼 있는 이 자료를 근거로 이시선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홍문동이 지금의 어느 위치인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국가기록원에서 1912년 토지대장도 살폈다. 토지대장과 호적표를 대조해 그곳에 거주한 가구를 일일히 살펴 이 가운데 ‘8통’에 두 가구가 오랫동안 살고 있던 사실을 발견했다. 중구청 토지관리과도 수차례 방문했다. 지역이 통폐합되면서 달라진 주소를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발품을 팔아 마침내 삼각동 117번지로 장소를 확정할 수 있었다. 윤 연구원은 “수많은 사료를 찾고 중구청을 찾아 지적도를 확인한 결과, 지금의 삼각동은 일제강점기에 삼각정이었으며, 여권통문이 발표된 대한제국기에는 굽은다리(굽교) 홍문석골, 홍문골, 홍문동 등으로 불리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1912년 경성부 삼각정 지적도 ⓒ윤정란씨 제공
1912년 경성부 삼각정 지적도 ⓒ윤정란씨 제공

윤 연구원이 폭염 속에서도 여권통문 선언 장소를 찾고 싶었던 이유는 “여성의 권익을 위한 활동과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적 활동은 1898년 9월 1일 ‘여권통문’의 선포에서 비롯됐지만 근대 한국 여성운동의 출발과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에 그친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 뜻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해 선언 장소를 찾아나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은 알아도 우리 여성들이 여성권리를 선포했던 9월 1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자는 안에 있어 밖을 말하지 말며 술과 밥을 지음이 마땅하다 하는지라. 어찌하여 사지육체가 사나이와 같은데 이 같은 압제를 받아 세상형편을 알지 못하고 죽은사람 모양이 되리오”이는 여권통문의 한 구절로,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주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1994년 삼각동 지적도 ⓒ윤정란씨 제공
1994년 삼각동 지적도 ⓒ윤정란씨 제공

현재 윤 연구원은 여성가족부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기념 표지석 건립을 요청했다.

윤 연구원은 “미국이 세네카폴즈 선언 장소를 여성권리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처럼 정부가 여권통문 선언과 우리나라 첫 여성단체인 찬양회 조직 장소를 대한민국 여성권리의 역사유적지로 지정하길 바란다”며 “국가 차원에서 이곳을 여성운동 1번지로 기념해 여권통문의 정신을 지금의 여성들이 이어 받고 기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여권통문 권위자, 근현대 건축 전문가 등이 참여한 심의위원회를 열고 제출된 사료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여권통문 선언 장소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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