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사건’ 선고문 "피고인은 무죄"
‘안희정 성폭력 사건’ 선고문 "피고인은 무죄"
  • 여성신문
  • 승인 2018.08.15 10:43
  • 수정 2018-08-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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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간음, 추행 때 위력행사가 있었음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조병구 부장판사는 114장에 이르는 판결문 중 선고 요지만을 추려 30여분에 걸쳐 읽어 내려갔다. 다음은 선고문 전문이다. 선고문 중 죄명은 ‘피감독자 간음’이나 이해의 편의를 위해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표시됐다.

 

2018고합75호 강제추행 등(피고인 안희정) 선고문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업무상 하급자로서 수행비서인 피해자에 대 하여, 피고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과 도지사로서의 지위 등 위력을 행사하여 피감독 자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저질렀고 더불어 기습적으로 강제추행을 저질 렀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는 2017. 7. 30. 출장을 간 러시아 호텔에서, 2017. 8. 13. 서울 강남 호 텔에서, 2017. 9. 3. 출장을 간 스위스 호텔에서, 2018. 2. 25. 피고인이 사적으로 이용 하던 마포의 오피스텔에서 각 위력에 의한 간음행위2)를 하여 4회의 간음행위를 저질 렀다는 것과, 2017. 11. 26. 카니발 승합차 내에서 피해자의 음부를 만져 위력에 의한 추행을 저질렀다는 것과, 2017. 7. 29. 러시아 요트, 2017. 8. 10. KTX, 2017. 8. 12. 호프집 공중화장실 앞, 2017. 8. 16. 중식당의 방, 2017. 8. 중순 혹은 말경 도지사 집 무실에서 껴안거나 입을 맞추는 등으로 기습적으로 강제추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2. 이 사건의 쟁점

○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그러한 행위 를 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으나 위력의 행사 등은 없었다는 것이고, 강제추행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실 자체가 없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접촉을 한 바 없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습니다.

○ 우선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과 관련한 쟁점을 보자면, 우리 처벌규정상 위력 관계 즉,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여 있는 남녀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고, ① 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② 그 위력이 행사되어야 하고, ③ 행사된 위력과 간음, 추행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 어야 하며, ④ 그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한 다는 것입니다.

○ 강제추행과 관련한 쟁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여 각 강제추행의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되는지 여부입니다.

 

3. 판단의 전제

가. 보호법익의 고려

○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우리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존재했던 조문이고, 위력에 의한 추행죄는 1994년 규정이 마련되었는데 그 조문의 구조는 간음죄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다른 나라의 성폭력 처벌규정 중 이와 같은 구조의 조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제정할 당시에 입법자들은 이를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하는 조문이라며 다음과 같은 검토를 합니다. 즉, ‘우리나라의 전통적 미풍에 비추어 부녀의 정조는 재산권은 물론이고 때로는 생명권보다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강자의 지위에 있는 자가 약자의 지위에 있는 부녀의 정조를 농락하는 소행에 대하여는 그것이 강간이 아닌 이상 아무런 처벌규칙도 없는 것이 우리 현행 형벌법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를 처벌키 위함이다.’ 라는 것입니다.

○ 하지만 이와 같이 정조를 보호법익으로 보는 후견적․전근대적 시각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1995년 형법개정 등을 통해 성범죄 처벌규정이 보호하려는 대상은 더 이상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은 ‘자기운명결정권’에 기반하고 있는데, 헌법상 인간의 존 엄과 가치․행복추구권으로부터, 개인이 자신의 삶에 관한 중대한 사항에 대하여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자기운명결정권’이 도출되고, 이러한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적 측면에서의 자유인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 성적 자기결정권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성적 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상대방 및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소극적인 의미에서 성적 침해행위를 방어하고 배제할 권리를 포함하는데, 형사법 규정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주로 후자입니다. 다만,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인격성숙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고, 미성년자 등 성생활과 관련된 인격이 성숙되지 아니한 사람은 더 높은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 남성우월적·전근대적 사회구조나 가치관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보호하여야 하고 여성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보호법익으로서 ‘정조’라는 개념은 폐기되고, 성적 주체성을 가진 존재가 행사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이 보호법익으로 교체된 점 뿐만 아니라 개인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자기 책임 아래 각자의 생활을 결정·형성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여성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이 당연하고, 이러한 여성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해석은 오히려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고 나아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즉, 여성이 상대방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하였음에도 자신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 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결국,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서 범행 당시의 제반 사정에 비추어 위력 행사에 의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법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나. 죄형법정주의 등 원칙에 기초한 해석과 판단

○ 이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성폭력”, “성폭행” 등의 개념이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아니 한 상황에서 언급되어 온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이라는 개념은 일의적이고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며 시대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에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폭력’의 개념에 관하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성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정의하여 물리적인 강제력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 비해, 한국성폭력상담소 발간 학술총서에서는 ‘자신의 의사에 반한 성적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행’이 성폭력의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어, 의사에 반하는 성적인 불쾌감이라는 주관적 측면을 주요 개념표지로 삼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성폭력(sexual violence)을 ‘가정과 일터를 포함하여 어느 상황에서든, 피해자와 어떠한 관계에 있건 간에, 강압(사회적 압박에서 물리력까지 포함)을 이용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에 반하는 성적 행위, 성적 행위를 하려는 시도, 원하지 않는 성적 언급이나 접촉 등’이라고 폭넓게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보더라도, 일반적으로는 폭행에 의한 강제적 성관계인 ‘강간’ 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강간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동의 없는 성관계는 모두 성폭행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 한편, 성폭력처벌법에서는 성폭력과 관련하여 처벌하여야 할 ‘성폭력범죄’라는 개념 을 설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구성요건을 ① 형법에서 정한 성풍속에 관한 죄,

② 성매매와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한 제반 범죄, ③ 강간과 추행의 죄, ④ 강도강간 등의 죄 및 ⑤ 성폭력처벌법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범죄를 성폭력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여타 법률에서는 성폭력처벌법에서 처벌 대상으로 삼은 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성폭력’으로 원용하기도 합니다.

○ 이처럼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범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탓에, 사회적으로 ‘성폭력행위’를 저지른 자에게 가해져야 할 사 회적․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가 부담해야 할 형사 법적 책임(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안에서 엄격히 인정되어야 할 책임입니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실제 그와 같은 사례가 다수 나타난 바 있습 니다. 이에 대해 성폭력행위에 대한 기존의 처벌규정이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 고 체계적 정비가 지체되고 있는 사정 등으로 말미암아 행위와 책임 사이에 불합리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 이러한 일부 비판에 경청할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합의에 의해 구성된 입법부의 입법행위를 통해 성폭력 관련 처벌규정에 관한 체계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이상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는 현행법상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각종 증거법칙에 따른 사실인정,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기초한 결론을 내려야 하고, 그것이 법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다.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적 고려

○ 한편, 성폭력 피해자는 충격, 수치심, 분노, 불신, 좌절, 무기력, 두려움, 공포 등 복 잡한 심리상태를 겪는 경우가 많고,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 증거판단에 있어서 성인지 감수성적 고려라 할 것입니다.

○ 일응, 이 사건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고, 피 해자의 저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인 위력이 직접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 사안이며,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피고인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지위나 권세 등 무형적 위력을 행사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행위나 추행을 당하여 성적 자기결 정권을 침해당한 것인지 여부는, 결국 피해자의 진술에 더하여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 계, 피고인과 피해자의 평소 및 범행 전후의 언행과 태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범 행 전후의 사정,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호소하고 대외적 공개에 이르게 된 경위 등 제반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 특히 그 판단에 이르는 증거평가를 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성인지 감수성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일견 피해자가 보인 범행 전후의 언행에 통념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소의 모순이나 비합리성이 있다고 하더라 도,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느끼거나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곤경이나 수치심 혹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신중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4. 구체적 공소사실 판단

가.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

(1) 기본적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

○ 먼저 피고인에게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에서의 위력이라고 볼만한 지위와 권세 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보면,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 고 있는 지위 및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본다면 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에서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 다만, 증거조사 결과에 따를 때, 피고인이 도청 내에서나 피해자에 대해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에 기초한 위력을 일반적으로 항시 행사해 왔다거나 이를 남용하는 등 이른바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나 기타 주변 직원 등의 자유의사를 억압 해왔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합니다. 따라서 개별 공소사실의 상황에서 피고인이 어떠 한 위력을 행사해 왔는지 개별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2)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

○ 우선 첫 간음행위인 2017. 7. 30. 러시아 호텔에서의 간음 상황에 대해서 봅니다.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최초 간음행위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보아 이 부분은 조금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이 사건 간음에 이르기 전의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경위와 정황에 관해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진술의 불일치가 있고, 텔레그램 대화내 용이 대부분 삭제되어 맥락이 연결되지 아니하며 그 삭제와 관련하여 의심스러운 정황도 보이는 점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러시아에서의 피해사실을 전임 수행비서인 신○○ 에게만 호소하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신○○와 8월 초경에 자주 통화한 사정도 있지만 구체적인 피해에 관하여 피해자가 진술했다는 것과 신○○가 들었다는 내용 에도 많은 차이가 있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상당히 이야기를 나누어 교감을 형성한 다음 성관계에 이르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지만, 피해자는 달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주장에 따라 보더라도, 간음행위 전 단계에서 피고인이 행한 신체접촉이 맥주를 들고 있는 피해 자를 포옹한 행위이고, 언어적으로는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행위 부분을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간음에 이르기 전 심리적으로 얼어붙는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하여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였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피고인의 요구에 따라 피고인을 살짝 안는 행위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한편,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처음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했다는 몇 시간 이후부터의 행동 즉,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머리를 했던 헤어샵에 찾아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나아가 이 사건 전체에 드러납니다만, 피해자는 수행비서직을 수행하는 내내 업무관련자와 피고인뿐만 아니라, 굳이 가식의 태도를 취할 필요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의 상시적인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단지 간음피해를 잊고 수행비서의 일로서 피고인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에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 다음으로 2017.8.13. 강남호텔에서의 간음과 관련해서는,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투숙하게 된 경위, 특히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씻고 오라’고 하였는데, 시간, 장소, 당시 상황, 과거 간음 상황 등에 비추어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별다른 반문이나 저항 없이 이에 응하게 된 사정이 있고, 2017.9.

3. 스위스 호텔에서의 간음과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객실을 교체해가며 피고인이 머무는 동에 숙소를 잡은 점, 이 당시 피해자는 이미 신○○에게 피해사실을 호소했고 신○○도 피고인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하였다고 하고 있음에도 피고인의 객실로 들어가 간음에 이르게 된 점, 스위스에서의 피해호소와 관련하여 피해자 및 신○○의 증언과 달리 실제 통화내역은 주장된 시간대 등과 불일치하는 점 등 의문이 가는 사정도 있습니다.

○ 2017. 11. 26. 카니발에서의 추행에 관하여 보면,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한 사정은 보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피해자 스스로가 피고인의 신체접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동을 취하였고, 그 전후 피고인 및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등 내역을 보아도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어떠한 단서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 마지막 간음행위인 2018. 2. 25. 마포 오피스텔에서의 간음에 관해, 피해자는 피고 인이 미투 운동 이야기를 꺼낼 때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겁에 질렸는데, 이 상황을 피고인이 이용한 것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피해자가 전날 피고인이 출연한 명견만리 촬영장에 가게 된 경위, 그날 밤 대전에 있다가 피고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경위, 오피스텔에서 나간 이후 행적, 이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피해자는 마지막 간음 후 증거를 모으고 고소 등 준비에 들어가게 되므로 해당 텔레그램 대화는 주요한 증거일 것입니다만)는 모두 삭제되어 있는 정황 등을 볼 때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습니다. 덧붙이면, 특히 피해자는 이 시점에 이미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피고인과 미투 운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는데, 뒤이어 피고인이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를 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수행비서도 아니고 달리 당시 심리적으로 제압을 당한 상황이라 볼만한 정황도 없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심야에 대전에서 올라올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는 적어도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가 미투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으로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습니다.

○ 종합하여 보면,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의 상황에 있어서 피해자의 내심이나 심리상태가 어떠하였는지를 떠나서, 적어도 피고인이 어떠한 위력을 행사했고 피해자가 이에 제압당할만한 상황이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 나아가 살펴보더라도 운전비서와의 갈등상황에서 드러나다시피 피해자는 개인적 취약성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할 수 없었던 사람으로 보이지도 아니하며, 법정에서 주요 다툼의 대상이 되었던 상화원 사건, 정무비서로의 보직변경과 관련된 문제 등은 피해자의 해명 자체가 객관적 증거에 어긋나거나 납득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 이와 관련하여, 일견 피해자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성폭력 피해나 2차 피해로 인한 충격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재판부에서는 고민하였고, 피해자의 심리상태와 관련하여 ① 피고인이 성적인 길들이기를 하여 ‘그루밍’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② 혹은 혐오적인 사건에 직면해서 무기력해지고 현실순응적이 되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와 같은 심리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 ③ ‘해리’나 ‘긴장성 부동화’ 또는 ‘심리적 얼어붙음’ 현상을 겪은 것은 아닌지, ④ 부인과 억압의 방어기제를 통해 견뎌온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하여 살펴보았으나, 제반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평가할 때 피해자가 이러한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나. 강제추행(기습추행)

○ 피고인이 5회에 걸쳐 피해자를 기습적으로 강제추행했다는 공소사실과 관련하여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른 강제추행행위가 있었다고 볼만한 증명이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 피해자의 진술과 같이 지속적으로 수시 성적 접촉행위가 있었고, 그 중 기억나는 대표적인 것만 공소사실로 구성된 것이라면 이는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과 달리, 업무상 상하관계에 기초하여 그 행위가 반복되었다는 취지로 볼 것이어서 법 적용상의 의문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5. 결론

○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 처벌의 체계는, ① 폭행, 협박을 사용하여 성폭력범죄를 저 지른 경우 처벌하는 규정, ② 미성년자 등 성적 자기결정권이 성숙하지 않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폭행, 협박에 이르지 않더라도 위력, 위계 등의 행사로 인한 성적 침해행위를 처벌하는 규정, ③ 업무상 위력 등을 행사한 성적 침해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를 처벌하고 있고, 나라에 따라서는 피해자의 의사나 결정에 중점을 두고 성폭력범죄의 처벌체계를 개선하는 입법을 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후 간음 및 추행행위를 저 질렀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한 이 사건에서, 설령 피해자의 진술처럼 피해자가 업무상 상급자인 피고인의 성관계 요구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고 통상적으로 볼 때에는 거부나 저항의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었으며,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는 반하는 상황 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의 처벌체계 하에서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 인의 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성폭력범죄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 이와 같이 폭행, 협박이나 위력의 행사와 같은 행위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처벌할 것인지의 문제 즉,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명했는데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는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이른바 ‘No Means No’ rule), 혹은 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성관계 동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성관계로 나아가면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이른바 ‘Yes Means Yes’ rule)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 문제이고,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 이 사건은 그와 같은 전제에서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 전부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 피고인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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