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여성행동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0차 헌법 개정과 남녀동수 개헌 촉구를 위한 3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각 정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여성행동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0차 헌법 개정과 남녀동수 개헌 촉구를 위한 3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각 정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무리 저항해도 안된다'

남성 중심사회구조에서 불가능

남녀동수 권력구조가 답

 

워마드 운영자 체포영장 발부 편파수사, 홍대 불법촬영 여성 징역형 판결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무죄 판결까지. #미투운동에 이어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등 여성들의 저항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맥락 속에서 8월 들어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이 사건들은 공권력이 여성을 탄압하고 있음 드러냈다. 이에 맞서 여성들이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 경찰 등 공권력이 만들어낸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차별해온 기존의 성차별 풍토 속에서 일어난 판결이나 사건들과는 의미가 다르다. 미투운동을 통해 많은 피해자들은 사실상 모든 여성이 가진 성희롱과 성폭력 경험을 치부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소환하기 위해 용기내 목소리를 냈다. 또 수만명이 수차례 혜화역 집회에 모여 불법촬영·유포 범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고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이미 목숨을 끊었거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실을 드러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최근 사건들은 보여준다. 또 하나의 개별 사건에 대해 싸움을 하고 개별 법 개정을 요구하지만 새로운 사건이 터지면서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러면서 사건들은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의 편협된 인식 정도로 치부된다. 이렇게 인권을 포함한 약자가 요구하는 포함한 권리는 묵살되거나 제거된다. 개별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지만 공권력은 기존의 법과 제도라는 기반 위에 공고하게 작동한다.

미투 운동과 6·13지방선거가 맞물려 정당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로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일부를 공천에서 배제하긴 했으나 여성 공천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17년 촛불집회 또한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정권을 바꾼 사건이었지만 성평등과 안전을 외쳤던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법과 제도, 룰을 만드는 조직의 인적 구성은 사실상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여성 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번번이 묵살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지금의 방식은 온건하며, 더 과격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대표적인 과격 여성인권운동인 영국 서프러제트는 건물 유리창을 깨고 폭탄을 던져 수차례 구속됐고, 결국엔 달리는 말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으면서 참정권 운동에서 승리했다. 올해는 영국 의회에서 21세 이상 모든 남성과 일정 자격을 갖춘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국민투표법이 통과된지 100주년이 됐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까지 법과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자리를 지금처럼 남성이 독점해서는 문제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자리에 여성이 동수로 대표되지 않는 한 혜화역과 광화문시위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이제 경찰청의 50%를 넘어 의회에서의 50%, 즉 남녀동수 정치를 요구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권력이라는 제도 자체가 기울어져 있기에 결과도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혜화역에 모인 페미니스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집행에 공정한 수사, 공정한 과정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분노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게임이기 때문에 그 게임을 아무리 공정하게 하더라도 공정할 수 없고, 결과 또한 공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 소장은 “변화의 초점이 법과 제도를 집행하는 차원에 머물러서 안 되며,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공기관의 집행에서 공정성의 범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 문제의식을 확장해나가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즉,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자리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해 제대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경찰의 공평무사한 성차별 타파와 성평등 실현을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권력을 갖자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여성이 사회 전면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힘있는 자리에 여성이 있어야 하고 대표적인 자리인 의회에서 남녀동수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드러나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명아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안희정 무죄 선고는 ‘합법화된 폭력’의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 오늘 우리가 서있는 역사의 시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준다. 그런가 하면 “‘몰카’ 따위의 표현으로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죽음조차 착취하는 폭력성을 희석화하고 여전히 그런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국가, 경찰, 사법, 행정 등 모든 방면의 인식 구조와 제도, 정책을 변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권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역사성 속에서 해석해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1930년대, 1990년대, 그리고 최근 페미니즘이 부상하던 시기에 반격이 반복돼왔다”면서 “특히 IMF, 세계경제체제 등으로 위기가 심화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위기의 해소 방안으로 약자들의 요구부터 삭제하는 방식으로 무력화시켰다”고 분석했다.따라서 “개개인의 문제, 페미니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국면에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함께 해결해나가야 하는 지난한 싸움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환멸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함께 싸워나가는 게 필요하다”면서 “흩어져 있던 여성들의 힘을 이런 총체적인 위기에서 결집해서 함께 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사회에서 제도적 변화는 항상 가장 늦게 일어났다.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으로 전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실천을 통해 이끌어내야 한다”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힘을 모아갈 수 있는 논의나 방식이다. 어느 하나의 단일 의제에 집중하는 방식 보다는 국면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는 “문제는 정치권”이라고 질타했다. “국회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많은 여성들이 밖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이들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 특히 여성 의원들 중에 혜화역 시위에 대해 언급한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게 정말 문제적이다. 여성을 시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을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투나 혜화역 집회에 관한 공개 발언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의제를 끌고 나가도록 압박하는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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