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안희정에 ‘전부 무죄’ 판결한 이유
재판부가 안희정에 ‘전부 무죄’ 판결한 이유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8.15 02:27
  • 수정 2018-08-15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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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행비서를 대상으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간음, 강제추행 등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4일 서울서부지법(부장 조병구)은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후 간음 및 추행행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며, “현행법이 정의한 성폭력 범죄로 볼 수도 없다”는 논리를 폈다.   피고인 안희정의 혐의에 대해서 '전부 무죄' 판결을 내리게 된 재판부의 사고를 정리해봤다. 

“외롭다, 안아달라” ‘위력 행사’로 볼 수 있나?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피해자의 행동이나 그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에서 ‘위력 행사’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봤다. 안 전 지사와 김씨가 ‘업무상 위력관계’이긴 했으나, ‘위력 행사’ 증거는 없었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명되고 있으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본다면 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에서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피고인이 위력을 일반적으로 행사해 왔다거나 이를 남용해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해 간음과 추행을 했고 피해자가 이에 제압당할만한 상황이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씻고 오라” 의미 알면서 저항 없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 재판부가 안 전 지사에 무죄를 선고한 주된 이유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거나, “피해자의 해명이 객관적 증거에 어긋나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판부는 예로써 “피고인이 맥주를 들고 있는 피해자를 포옹하며 ‘외롭다 안아달라’고 말했다. 이 행위를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피해자는 매우 당황해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지만 피고인의 요구에 살짝 안는 행위로 나아가기도 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씻고 오라’고 했는데, 시간, 장소, 당시 상황, 과거 간음 상황 등에 비추어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별다른 반문이나 저항 없이 이에 응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행위가 미투 운동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하지 않았다” 등을 열거했다. 이는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을 두루 고려하는 최근 대법원 판례 흐름과도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안 전 지사가 피해자를 5차례 기습적으로 강제추행한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지사의 무죄 선고를 규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지사의 무죄 선고를 규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루밍, 심리적 얼어붙음, 무기력 상태’ 등 인정 안돼

‘젠더 관점으로 살펴봐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범죄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고 피해자의 성감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피고인에게 ‘그루밍’(성적 길들이기)을 당했는지,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졌는지, ‘해리’(다중인격)나 ‘긴장성 부동화(저항능력 마비)’ 또는 ‘심리적 얼어붙음’을 겪었는지, 부인과 억압의 방어기제를 통해 견뎌왔는지 등 여부를 살폈지만 그런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겼다고 볼수 없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안 전 지사 변호인단이 앞서 변론에서 “(피해자는)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혼인 경험이 있는 학벌 좋은 여성으로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무보수 자원봉사로 일할 정도로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여성”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슷하다. 재판부는 “여성이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기로 했음에도 사후적으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 법체계상 성폭행 범죄로 인정 안돼” 

재판부는 현행법상 안 전 지사의 행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우리 법으로 처벌가능한 성폭력 범죄는 △폭행이나 협박을 써서 성폭행 △미성년자 등 성숙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성적 침해행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사건은 “폭행, 협박, 위력 행사가 없었거나 증거가 부족하고 피해자가 성인이므로”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폭행, 협박이나 위력의 행사와 같은 행위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처벌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적 문제이고, 사회 전반의 성문화·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 할 문제”라면서 국회와 사회로 공을 넘기는 태도를 보였다. 

검찰 “납득 어려워…항소하겠다”

한편, 검찰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오정희)는 14일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여러 인적·물적 증거에 의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됨에도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며 “항소심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선 “현행법상 ‘위력에 의한 간음’ 유죄 입증 어려워…새로운 법률적 틀 필요” 

이번 판결을 놓고 법조계도 술렁였지만, 무죄 판결을 예상했다는 의견도 다수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경환 변호사는 “원래 위력에 의한 간음을 유죄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도 유죄가 선고될 수 있을지 불안했는데 이번에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관건은 피해자 관점에서 얼마나 사실관계를 잘 따지느냐인데, 이번 건처럼 성인 여성이 피해자이고, 큰 강제력이 행사되지 않았고 비교적 단기간에 걸쳐 여러 번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가장 유죄 입증이 어려운 유형이다. 애초에 가해자는 특별히 힘을 가할 필요 없고, 피해자는 반항하기 어려워서 계속 (범죄 행위에) 끌려 들어가고.... 그런 관계를 해석하는 법률적 틀이 없는 것 같다. 우리 형법은 행위를 하나하나 분절해서 행위 시 강제력이 행사됐는가, 피해자가 저항했는가를 따진다. 사실관계와 맥락을 함께 보는 법률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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