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이 후보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이 후보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 후보자, 25일 인사청문회서

“낙태죄 존치해야…퀴어축제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 아냐”

모낙폐 “인권감수성·사회적 약자 이해 없고

‘생명’ 경시하는 이 후보자 임명 반대”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형법상) 낙태죄 존치’ 입장을 밝혔다. “성소수자는 경우에 따라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해가 없는 대법관, 여성의 생명을 경시하는 대법관은 필요 없다”며 이 후보자 임명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신임대법관 후보 청문회에서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며 존폐에 관한 입장을 묻자, “모자보건법이라든지 특별하게 법률로 예외를 규정하지 않은 이상, 잉태된 생명이 중간에 인위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지만 결국 (태아의 생명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법익”이라고 말했다. 낙태죄 문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 문제로 축소하는 낡은 이분법이 또 소환된 것이다. 이 후보자는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다.

송 의원은 “현행법상 낙태죄는 여성과 의사에게만 죄를 묻고, 함께 책임져야 할 남성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고 지적했지만, 이 후보자는 이에 관한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낙태죄를 존속하되 여성의 문제로 놔두지 말고 사회 전체가 배려하고 여성이 혼자 그 짐을 짊어지고 가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이에 1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는 26일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 낙태죄 존치입장 규탄’ 성명을 내고 “세계적 흐름에도 완전히 역행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여성이 임신중지를 불가피하고 부득이하게 결정하는 이유는 태아의 생명을 중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태어날 아이의 행복을 그 누구보다도 바라는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가 될 여성이며, 임신중지 과정에서의 여성의 번민과 고통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낙태죄는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표적인 생명경시 법”이라며 “불법화된,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어왔다. 국가는 장애나 질병이 있는 생명, 사회적으로 불리하거나 열악한 조건에 있는 생명을 적극 보호·보장하기 위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방기해 왔고, 심지어 한센인 강제단종 사례와 같이 적극적으로 생명을 선별하는 국가 폭력을 자행해왔다”고 지적했다.

최근 ‘임신중절 금지법’을 폐기한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여러 국가들은 여성이 임신중절할 권리를 더욱 확보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추세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이며 9월 전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24일 위헌소송 공개변론에서도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임신·출산의 주체인 여성이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동시에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가 열려 참가자들이 집회 후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인사동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가 열려 참가자들이 집회 후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인사동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 후보자는 ‘성소수자는 경우에 따라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날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소수자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묻자, 그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경우라면 사회적 약자로 볼 수 있지만, 퀴어 축제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라고 본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라며 “여성, 장애인, 이주민은 (사회적 약자라는 데) 동의하지만 성소수자가 모든 경우에 사회적 약자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성적 지향을 공공복리와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다. 내무반 내에서 (동성애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지 않냐. 군대 내에서는 성소수자가 군기를 흩트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국가보안법에는 문제가 없다. 일부시기에 국민들의 기본권 보장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판사들의 양심을 믿는다”고도 말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나가야 할 대법관 후보자의 발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높다. 모낙폐는 “인권감수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해가 없거나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며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은 필요시 국가에 의해 침해/희생될 수 있는 인권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스스로의 삶과 결정을 존중받아야 할 ‘생명’들을 정말로 경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후보자”라며 “우리는 이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을 반대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낙태죄’를 옹호하는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의 위헌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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