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 회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여 일하고 있고, 아이들의 연령은 태어난지 100일된 아기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하다. 여러 번의 휴일과 연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전염병은 그래도 견딜만하지만 방학이 다가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평소 ‘육아하는 엄마들이 모여 일해도 아무 지장 없어요’ 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며 회사를 운영해오고 있지만, 방학이 다가올 때마다 회사업무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공포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온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고 싶어서, 하지만 도저히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면서는 답이 없어서 창업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방학은 일하는 부모에게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고비이다. 그나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방학이라도 1~2주로 짧은 경우가 많지만, 회사가 점점 성장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직원도 많아지다 보니 방학이 주는 타격이 없다 말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있어 자녀의 방학이란 단지 기사에서 다루듯,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어서 힘들다더라, 더 많은 대책이 있어야 하더라 정도의 거리감 있는 한 줄의 글이 아니다.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더 큰 절망감을 느끼는 순간은, 그래도 내 회사를 운영하며 육아를 병행하는 지금 나의 현실이, 다른 보통의 부모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은 편이라는 점이다.

임신을 알게 된 순간 과연 얼마나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생각했었다. 9시 이전까지의 출근, 퇴근을 딱 맞추어 한다고 해도 저녁6시, 집에 오면 아무리 빨라도 7시 30분이 넘을 것이다. 어린이집 갈 때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가능할까? 혹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께 이 짐을 어린이집 보낼 때까지 부탁드린다 해도 정말 그게 끝일까? 저녁 7시가 넘도록 봐주는 기관이 있을까? 그렇게 보내는 내 마음이 정말 괜찮을까?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일하기를 포기했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창업을 하게 된 지금, 일의 속도가 느려지고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재택근무나 아이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대안을 세울 수는 있다. 그래도 내 회사니까, “이번 주 아이와 함께 회의에 참석해도 될까요?” 라는 직원의 요청에 흔쾌히 그럽시다! 라고 답할 수 있다.그러니 이 정도면 정말 아주 괜찮은 상황인 것이다.

방학을 본격적으로 한 주 앞두고, 나의 SNS는 창업가이거나 워킹맘/대디인 많은 부모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차 있다.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왜 초등학교 돌봄은 이토록 현실적이지 못한지, 그나마 이마저도 모든 아이들이 이용할 수 없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어 내야하는 자리라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매순간 깨닫는다. 오죽하면 아이를 맡길 적당한 곳을 찾는 것보다 아이에게 스스로 라면을 끓이고 집에서 혼자 시간 보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절망적인 유머가 서로 오갈까. 게다가 이것은 맞벌이 부모만이 아닌, 현재 일하지 않고 전업으로 육아를 하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준다. ‘이제 아이가 좀 자랐으니 다시 일을 해볼까, 무언가를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해볼까’ 하다가도 방학이라는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현실에 발목이 다시 묶여버리는 기분이라 용기를 좀처럼 낼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들의 방학은, 단지 일하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이 고군분투하며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다양하게 부모를 지원하는 제도를 내놓고는 있으나, 여전히 오늘도 일과 가정을 양손에 쥐고 치열하게 버텨가고 있는 부모 누구에게도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번 방학도 지난 방학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할 것인지, 어디가 시행의 주체가 될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부모 스스로가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기업이 스스로 만드는 다양한 제도와 지원이 하나의 해결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교육기관들과 함께 현실적인 보육 및 돌봄 제도를 논의해볼 수도 있고, 지역 내에 있는 유휴공간과 인력이 이에 적극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모두가 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고, 다각적인 해결책이 논의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 문제 자체가 우리 모두가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주제>로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방학도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각각의 가정과 부모의 개인적인 몫이 아닌,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공공의 주제로서 이야기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방학, 우리 회사는 아이와 함께 회사로 출근한다. 하지만 다음 방학에는 보다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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