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미혼모 시설을 들여다 보다 

가족과 주변의 눈을 피해 ‘제주’로

지지만 해줘도 양육 포기 안 해

임대주택 정책은 다자녀 중심

미혼모는 우선순위에 밀려

미혼모들 간의 정서적 연대 중요

 

 

제주시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인 아기사랑엄마의집 직원이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제주시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인 아기사랑엄마의집 직원이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미혼모의 삶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 ‘애서원’을 찾아가려면 제주 시내에서 차로 30분 넘게 이동해야 한다. 한적한 도로를 한참 달린 끝에는 인적이 드문 작은 시골 마을이 나온다. 찻길에서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좁은 길로 더 들어가면 때마침 핀 치자꽃 향기가 가득한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집이 드러난다. 이곳에는 현재 마흔네 명의 엄마들이 아기들과 살고 있다.

제주시의 미혼모시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미혼모 위치가 잘 드러난다. 애서원에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족과 주변의 눈을 피해 제주라는 섬으로 도피해 온 이들이 적지 않다. 새롭게 펼칠 삶에 대한 나름의 선택이다. 하지만 반대로 제주도의 미혼모들은 폐쇄된 지역사회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육지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양육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동안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다. 가족, 학교, 직장, 친구들에게조차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미혼모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편견과 차별로 점점 고립되어 가기도 한다.

“주민들의 눈을 피하다 보니 이곳에 터를 마련하게 됐다”는 애서원 설립자 임애덕 원장의 말도 미혼모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뒷받침해준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3년 애서원 설립 당시에는 주변에 인가가 거의 없었다고.

“지금도 엄마(미혼모)들이 동네 할머니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요. 하교 후 교복 입고 버스 타고 와서 이 동네에 내리면 할머니들이 ‘애서원 가는구나’라고 대놓고 말한대요. 물론 인사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인 엄마들은 그런 말을 참 힘들어하지요. 조금만 배려해 주면 될 텐데….”

임 원장은 그럼에도 “차별이 제일 심한 건 부모들”이라고 말한다.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해 가족을 피해서 시설에 찾아온다고. 몇 년이 지나도 출산 사실을 말하지 못해 부모가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임애덕 애서원 원장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임애덕 애서원 원장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고립되지 않도록 ‘함께’ 하기

애서원에서는 미혼모를 위해 여러 가지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청소년미혼모들을 위해 자녀 양육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대안위탁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아 미혼모들이 학교 졸업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정부 지원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꿈꾸는 축구단’과 ‘꿈꾸는 다락방’이 있다. 특히 임 원장은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이 축구단을 만든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축구단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엄마와 선생님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에너지를 힘껏 발산하며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아들 셋을 키우고 있는 미혼부 경호(가명)씨의 경우, “여러 가지 여건상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잘 나가지 못해 미안했는데, 축구단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세 아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축구단은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울타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시설에서 나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미혼모가 긴급 상황에 놓일 경우, 별도의 후원금을 적립한 ‘아리랑 금고’를 통해 소액 자금도 지원한다. 파산 위기에 내몰린 한 미혼모 가정이 몇 달간 전기세마저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일을 계기로 시작했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양육 미혼모들을 위해 임신부터 출산·양육을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 정책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영유아보육법 등에 의해서 수급자격이 되면 지원을 받는다. 한부모가족 특화정책인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서는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대상이 되기도 한다. 긴급하게 생활공간이 필요한 미혼모들은 미혼모 및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입소해서 생활할 수 있는 시설 형태로는 크게 1~3차까지 세 종류가 있다. 양육하는 아이의 연령 등을 기준으로 입소 자격을 구분해 시설을 운영한다. 애서원의 경우는 1차시설로서, 1년을 머물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6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제주시에는 1차 시설 애서원, 2차 시설 아기사랑엄마의집, 3차 시설 모자원이 있다. 또 최근에는 양육 미혼모들의 자립훈련 공간으로 마련한 카페도 운영 중이다.

주택 지원 절실

2차 시설인 아기사랑엄마의집은 양육 미혼모가 사회에 나아가기 전 자립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2세 미만의 영유아를 양육하는 미혼모가 2년까지 생활할 수 있고 추가 1년 연장할 수 있다.

현재 아기사랑엄마의집은 제주 시내의 한 다세대 원룸건물에 입주해있다. 양육미혼모가 거주하는 10세대와 사무실 2세대를 임대해 사용중이다. 같은 건물의 다른 입주자들이 미혼모 시설임을 알 수 없도록 시설을 안내하는 간판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기사랑엄마의집은 애서원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청수가 애서원에서 나와 갈 곳이 없는 양육미혼모들이 자활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2005년에 그룹홈으로 출발해 2007년 미혼한부모자가족복지시설로 신고를 마쳤다.

여기에서는 미혼모가 성실하게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경제적 자립을 돕는 취업 및 학업교육지원과 사회적·심리적 자립을 도우며 입소 기간 동안 육아, 의료, 식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양육 스트레스도 덜 수 있다. 현재 미혼모 8명이 각자 자녀 한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이 중 5명이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일을 하고 있으며 대학생 2명, 고등학생이 1명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희 원장은 “이곳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려는 마음이 커서 왔다고 생각한다.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지지만 해줘도 아이 양육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양육미혼모의 자립에 가장 필요한 지원정책으로 주택을 꼽았다.

“기초수급비를 받아도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주택입니다. 양육 미혼모의 경우 임대주택에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임대주택 정책이 다자녀 중심이에요. 한부모가정에 포섭되는 미혼모들은 대체로 자녀가 한 명이고요.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꼴찌예요.”

어린 자녀를 둔 미혼모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서적 지원과 사회경제교육도 중요하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정서적 측면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알게 된 미혼모들 간의 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엄마들과 퇴소한 엄마들이 꾸준히 연락해요. 직장생활 열심히 하면서 아기를 키우면서 잘 지내는 이들이 많아요. 어린 나이에 정서적으로도 힘들고 일과 양육을 함께 하기도 어렵겠지만 선생님들이 챙겨주는 대로 따라가고 다른 엄마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저 엄마가 하는데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동네 주민들의 인식 탓에 시설 입소 꺼려

제주의 3차 시설로는 ‘모자원’이 있다. 모자원은 전국에 25곳이 있고 3년간 거주할 수 있다. 양육 미혼모뿐만 아니라 저소득 한부모가족을 위한 시설이다. 그중 한 곳인 제주모자원 입구에는 ‘모자원’이라는 간판 대신 ‘OO빌라’로 돼 있다. 4층 규모의 작은 아파트 총 16세대 중 현재 5세대만이 거주하고 있다. 사별 3세대, 미혼모 2세대이다.

입소율이 낮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건축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아파트여서 선호하지 않는 점도 있지만, 한부모시설이라는 동네 주민들의 인식도 입소를 꺼리게 만든다고 했다. 10년 전 모자원 간판을 떼고 빌라로 바꿔 달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자원 관계자는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경제적인 문제”라고 전했다. 시설에서 나간 후 집을 구해야 하는데 제주도 집세가 최근 5년 새 크게 오르면서 부담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도 모자원 시설은 인기가 없다. 시설이 낡고 오래된 제주모자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지역의 많은 모자원이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올해 5월 제주시내 인근에 문을 연 카페 ‘돈 테일러 익스프레스(Don Taylor Express)’. 미혼모들이 기술을 습득하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여성신문
올해 5월 제주시내 인근에 문을 연 카페 ‘돈 테일러 익스프레스(Don Taylor Express)’. 미혼모들이 기술을 습득하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여성신문

이웃들과 새로운 관계맺기 시도

미혼모들이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과 독박육아, 낮아진 자존감 등 복합적 요인으로 좋은 일자리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올해 5월 제주 시내 인근에 문을 연 카페 ‘돈 테일러 익스프레스(Don Taylor Express)’는 미혼모들이 기술을 습득하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애서원이 주도하고 사회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미국인 후원가 돈 테일러씨가 지원했다.

카페는 한부모가족 자립 기반 구축과 사회·심리적 기능 향상을 위해 추진하는 프로젝트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본지 기자들이 찾아간 지난 6일 오후 7시쯤 카페의 한 테이블에서는 아기사랑엄마의집에서 생활하는 미혼모들이 모임을 하고 있었다. 카페 안은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독립한 후 제주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현아(가명)씨는 퇴근 후 이곳에 들러 카페 일을 돕고 있었다.

카페는 직업재활 시설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사회에서 배제돼온 미혼모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티인 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지내왔던 미혼모들이 카페라는 열린 공간에 이웃을 불러들여 자신을 드러내고 관계맺기를 시도하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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