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명의 시민 이상도 이하도 사람입니다.”

켄 로치(Ken Loach) 감독이 2016년 제작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복지 시스템의 비인간적인 태도를 고발한다. 한평생 목수일로 삶을 꾸려온 사람이 심장병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그가 만나게 되는 사회 보장 제도는 행정편의주의적인 태도로 가득하다. 모든 절차는 낯설고 까다로우며, 담당공무원은 복지대상자를 엄선해 탈락시키는 일에만 의욕적이다. 나이 먹고 병들어 힘든 이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매뉴얼에 따르기만을 요구하고 예외는 없다.

또 한 사람이 있다.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런던에서 뉴캐슬로 이사 온 싱글맘 케이티는 익숙하지 않은 길을 찾아 헤매다 복지상담 예약 시간에 10분 늦는다. 그 이유로 상담을 거절당하고, 사정하는 케이티와 그를 편든 다니엘은 복지센터에서 쫓겨난다. 그들이 격렬하게 항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무게와 공포를 들여다 봐주는 국가는 없었다.

감독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아남기 위해서 끝없는 수모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들. 이런 것에 화를 내지 않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공무원들은 악당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의 공정함이고, 효율적인 행정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더 큰 가치를 놓쳤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고, 사람은 사람이 울 때 그가 왜 울고 있는지 기다려줘야 한다. 울고 있는 사람의 의상과 울고 있는 사람의 태도와 울고 있는 사람의 성별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울고 있는 사람이 내 맘에 들고 안들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무슨 의미있는 가치를 남길 수 있겠는가.

얼마 전, 혜화역 시위에서 등장한 구호 하나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라면 온라인에서 일 없이 사용하는 문구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강한 반응을 보였다. 몇 만 명이 모인 시위였다. 일사불란하게 통제되며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이유일 따름이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맘으로 뜨거운 길 위에 앉아 있었는지 관심도 가져주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옛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 가족이 불법촬영물에 나온 것 같다는 것이다. URL 영상 제목은 내 가족의 이름과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동명의 다른 누군가였다. 정신을 차리고 사이트를 보니 너무도 많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거나 본인이냐 되물음 당하며 사건 접수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삶의 무게는 어떨까.

평화로운 일상은 시혜가 아니다. 나의 권리이고, 당신의 권리이고, 시민의 권리이다. 바로 그 권리를 위해 우리 모두는 촛불을 들었다. 우리 모두가 원했던 것은 상식과 배려가 존재하는 공화국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바꿨고, 지금의 정부가 들어섰다.

2018년 한국의 여성들은 말하고 있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보통의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고 싶다고. 이 소리는 더 커질 것이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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