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으로 인한 근로 환경 악화

‘산업안전’ 틀 안에서 빠져 있어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위해

산업안전보건 개념 재구성해야

 

 

 

김양지영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김양지영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미투(Metoo) 운동으로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미투가 제기하고 있는 성폭력에 직장 내 성희롱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내 성희롱의 심각성을 알아가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각종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작년 말 남녀고용평등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 및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다. 게다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범정부 차원의 직장 내 성희롱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 여가부는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 익명신고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 상 고용상 성차별에 해당한다. 여성들의 고용환경을 저해해 노동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를 차별의 범주를 넘어 산업안전의 범주로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협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다면 가능하다. 성희롱이 발생하면 성희롱 피해자들은 분노, 수치심, 두려움, 우울증, 무력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겪는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수면장애, 두통, 체중감소 및 폭식 등과 같은 신체적 피해 뿐 아니라 근로의욕 저하, 자신감 저하, 대인기피, 집중력 저하 등의 정신적 피해로 인해 직장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듯 2017년 서울여성노동자회가 평등의전화 성희롱 피해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의 72%가 퇴사했다. 국내외 연구들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성희롱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고 하고 있다. 이제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며 남녀 간의 건강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직장 내 성희롱은 업무상 위험요인으로 인정돼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아직까지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의 위험요인으로 보고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성희롱을 작업환경의 위험요인으로 보고 있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의 유해와 위험은 주로 물리적 사고위험과 화학물질, 소음, 공해에 의한 위험과 같은 물질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으로 한정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마주한 지금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의 위험은 여성의 직장경험을 담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직장 안에서 일상적으로 성희롱·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성희롱 피해로 일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에는 일을 그만둔다. 전 산업에 걸쳐 여성들의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교집합의 위험요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이 간과되어 ‘산업안전’의 테두리 안에 성희롱으로 인한 근로 환경 악화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성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의 개념이 여성의 노동 경험에 기반해 확장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만약 직장 내 성희롱이 작업환경의 위험요인이 되면 산업안전보건법 상 사업주의 예방조치의무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인 도구나 위험물질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규제를 하는 것처럼 성희롱 예방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바로 적극적인 기업주의 성희롱 예방 의무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 책임을 강화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성희롱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실제 산업안전으로 접근해 성희롱 문제를 풀고 있는 곳이 있다. 미국의 코네티컷주는 직장 내 성희롱을 고용차별로 보고 고용환경을 저해하는 노동권과 건강권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코네티컷주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교육으로, 직장 내폭력예방교육이란 이름으로 산업재해와 직장 내 성희롱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직장 내 성희롱을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으로 보고 산업안전으로 접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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