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불교계 페미니스트 본각 스님

화엄경 연구 30년 

연구소 세워 비구니사 정리·

불교계 성차별 개선 노력

여성단체연합 후원회장 맡아

여성 인권 향상에도 적극

“비구니와 비구 서로 존중해야”

 

 

본각 스님은 2004년에 8차 세계여성불자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비구니 위상을 높이고 성차별을 개선하는데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본각 스님은 2004년에 8차 세계여성불자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비구니 위상을 높이고 성차별을 개선하는데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에서 차로 30여분 달려 도착한 경기 고양시 서오릉 인근.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이곳에 ‘금륜사’가 있다. 이곳은 흔히 사찰하면 떠올리는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전통 사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2층짜리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건물 외관은 흡사 큰 카페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 대신 아늑한 북카페가 차려져 있다. 금륜사는 안과 밖 모두 예상을 깨뜨린다. 이곳 주지인 본각 스님은 근엄하기보다는 가까운 이웃처럼 살갑다. 금륜사는 누구나 차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턱 낮은 사찰이었다.

본각 스님은 비구니(여성 승려)계의 대표적인 강백(경론을 가르치는 스님)으로 손꼽힌다. 1955년 육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동국대 철학과와 봉녕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유학해 릿쇼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고마자와대학에서 불교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6년 간 중앙승가대에서 교단에 섰다. 2016년 비구니 교수로는 처음으로 정년퇴임을 맞기도 했다. 최근에는 30여년 간의 화엄학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화엄교학 강론』을 펴냈다. 본각 스님은 특히 비구니사 연구에 매진하고 불교계 성차별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비구니연구소를 세우고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세계불교여성협회한국지부 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를 맡는 등 여성의 불교 교육과 비구니 수계 문제에 앞장섰다. 2004년에 8차 세계여성불자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 후원회장으로 여성 인권 향상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14세에 시작한 세상공부

금륜사를 찾은 이날은 본각 스님의 친아버지 기일이었다. 육남매 중 막내인 본각 스님은 세살 때 가족이 함께 출가했다. 온 가족이 함께 출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49재를 인연으로 성철 스님을 만나 장남 천제 스님이 성철 스님의 맏상좌로 출가했다. 1년 뒤 어머니는 오남매에게 함께 출가할 것을 권했다.

“당시 어머니는 함께 출가하면 가족이 함께 살 줄 아셨던 것 같아요. 출가한 뒤 육남매가 뿔뿔이 흩어질 줄 모르셨던 거죠. 출가를 결심했지만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그 심정이 얼마나 황망하셨을지, 환갑이 지나서야 그 심정이 헤아려졌어요.” 어머니는 입산 3년 만에 돌아가셨다. 천제 스님과 장녀 혜근 스님, 차남 삼소 스님, 차녀 적조 스님, 몇해 전 입적한 삼녀 보명 스님 그리고 본각 스님까지 함께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본각 스님은 인천 부용암에서 동자승으로 자랐다. 지금은 ‘화엄학 대가’로 손꼽히지만, 당시에는 14세가 될 때까지 글을 읽을 줄도 몰랐다. “큰 오빠 천제 스님 덕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는데, 공부를 할수록 세상공부를 하고 싶더라고요. 어렵게 속마음을 말씀 드리고 많은 노력 끝에 어렵게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인화여고에 진학하면서 매번 베어내던 무명초(머리칼)를 길렀다. 그때부터 ‘본각’ 대신 속명인 ‘진영유’로 불렸다. 그는 4년의 대학 공부를 마친 뒤 다시 삭발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유학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 모습을 본 은사 스님이 ‘결혼하고 싶으면 해, 다른 아이들도 다 가르쳐 보냈는데 너도 보내줄 수 있다’고 딱 말씀 하시더라고요. 제 고민이 결혼 때문인 줄 아셨던 모양이에요. 그 길로 삭발을 했죠. 환속을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미련도 없었어요.”

이후 일본으로 유학해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중앙승가대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2000년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 금화사를 창건하고 10년 간 법회를 열었다. 이후 신도가 늘면서 지금의 금륜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천불도 앞에 앉은 본각 스님. 천불도는 수화로 법구경의 내용을 수화로 표현하는 부처의 모습이 다채롭게 묘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천불도 앞에 앉은 본각 스님. 천불도는 수화로 법구경의 내용을 수화로 표현하는 부처의 모습이 다채롭게 묘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화로 설하는 1000명의 부처

법당이 있는 금륜사 2층에 오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1층부터 2층까지 한 쪽 벽면이 불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가까이서보니 다양한 피부색의 부처가 미소를 짓고 윙크도 한다. 안경을 쓰거나 컴퓨터를 하는 부처도 있다. 배경도 자동차부터 파라솔까지 다채롭다. 부처의 표정도 다르지만 손짓도 모두 다르다. 본각 스님의 제안으로 수묵화가 이호신 화백이 6년간 그린 천불도다. 본각 스님은 “법구경(경전)의 내용을 수화로 표현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획일적 형식에서 벗어난 천불도는 불교가 말하는 인류애와 삼라만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특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며 평등을 강조한 부처의 가르침이 그림에서부터 전해졌다.

본각 스님은 책 『불교 페미니즘과 리더십』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불교 교단이 만들어진 기원전 4세기경 초기 불교에서는 남성과 동등하게 출가하는 여성 수행자가 있었고, 교단 내에서도 남자 수행자와 평등하게 비구니로 자격을 부여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화엄경에 등장하는 53 선지식(수행자들의 스승) 가운데 여성 선지식은 21명에 달한다. 본각 스님은 최근 『화엄교학 강론』에서 21명의 여성 선지식의 명칭과 법문을 일일이 표로 정리하기도 했다. 

화엄의 세계가 깨달음 줄 것

본각 스님은 불교계 성차별 문제는 부처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2004년 종회의원으로 종헌종법개정소위원회 활동 당시 ‘비구니의 법계는 율장에 준한다’는 종법을 ‘비구(남성 스님)에 준한다’로 개정시키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조계종 승려 중 절반에 달하는데도 비구니는 아직도 총무원장이나 본사 주지를 맡을 수 없다.

“(이같은 차별은) 부처님의 본의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관습이 많이 반영됐다고 봅니다. 비구와 비구니가 대립으로 해결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요. 비구는 비구니를 존중하고 비구니도 스스로 자기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정년 퇴임했지만 본각 스님의 하루는 더욱 분주하다. “이번 한 생에 열두 생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일주일에 이틀은 수원 봉녕사승가대학에서 예비 비구니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매주 한 차례 방송에 출연하며 주말이면 법회를 연다. 최근에는 불교환경연대와 협약을 맺고 1회용품 안 쓰기 운동에 앞장서고, 내년 6월에는 한국을 대표해 호주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본각 스님은 앞으로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화엄경 관련 서적을 내고 싶다고 했다. 무한경쟁시대 속에서 모든 존재는 연결돼 있다는 화엄의 세계가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세상을 모두 연기(모두가 관계 속에 있다는 이치)로서 바라보는 것은 종교에 관계없이 이 시대에 중요한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을 거둬내고 갈등을 완화하는 ‘중도’와 ‘남이 편안해지면 나도 편안하다’는 화엄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 사람들의 아우성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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