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베스 버클리 미국 보스턴대 지구과학·생지화학 박사과정생과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대표가 3일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라베스 버클리 미국 보스턴대 지구과학·생지화학 박사과정생과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대표가 3일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담] 사라베스 버클리 보스턴대 박사과정·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대표

“여성·환경 이슈, 우리 모두의 삶과 관련된 문제

대학·지역 내 ‘풀뿌리 에코 페미니즘 운동’ 펼쳐요”

한국의 에코페미니스트와 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자가 만났다. 이화-루스 국제 세미나(ELIS) 참석차 방한한 사라베스 버클리(Sarabeth Buckley) 미국 보스턴대 지구과학·생지화학 박사과정생과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대표가 3일 이화여대에서 ‘환경 문제와 페미니즘의 만남’을 주제로 대담했다. 

자신을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페미니스트 과학자”라고 소개하는 버클리 씨는 환경과 페미니즘 간 연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날 여러 연구자 앞에서 최신 연구 결과를 활용해 기후 변화와 식량 수요 증대 문제를 대중에게 알릴 방법에 관해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며, 특히 에코 페미니즘의 의제와 흐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장이 대표는 에코 페미니즘의 역사, 최근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등 한국을 뒤흔든 여성·환경 관련 이슈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활동을 간략히 소개했다.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은 물론 인간과 자연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명 위기의 시대에서 다시 인간과 자연의 삶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실천적 사상이다. 1960년대 시작된 제2세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부터 다양한 에코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됐다. 장이 대표는 “인도에서 한 세기 이상 이어진 ‘칩코(chipko·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껴안고 버티기)’ 운동처럼 오래전부터 전 세계 여성들은 개발 움직임에 저항해 자연을 지키려 싸워왔다”고 설명했다. 인도의 핵물리학자이자 생태환경·여성인권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독일 여성학자인 마리아 미즈(Maria Mies) 등이 그 선구자로 꼽힌다. 

“여성은 수백년 전부터 자연·생명 지키려 싸웠다”

버클리 씨가 “여성이니까 환경운동을 잘 할 수 있다고 보느냐”라고 묻자, 장이 대표는 “가사와 육아를 오랫동안 맡아 온 여성들은, 비록 그게 여성이 전담할 일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자본의 탐욕, 개발로 인한 피해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지키려는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환경운동 단체 활동가 대부분이 여성이다. 기업이 강에 독성물질을 뿌릴 때 단체를 조직해 싸운 이들도, 밀양 송전탑 사태 때 끝까지 싸운 이들도 여성이었다. 최근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이슈, ‘낙태죄’ 폐지 운동과 관련해서도 해외 단체를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연대 투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에코 페미니즘의 의제들은 여성의 삶과 긴밀하게 맞닿은 문제들이기도 하다. 장이 대표는 이런 문제가 그간 경시된 이유로 ‘과학·의학 분야 여성 연구자 부족’을 꼽았다. “과학·의학 분야에서 여성 건강 관련 독자적 연구는 드물다. 젠더 관점을 받아들이려는 연구자들도 손에 꼽는다. 우선 여성이 그 분야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명예남성’만 겨우 생존하는 분위기다. 여성의 목소리가 연구와 제도에 반영되지 않다 보니 생리대 등 여성 건강·기본권과 직결되는 문제도 여태껏 제대로 조사된 적 없다.” 그는 “여성 연구자들이 늘어난다면 기존 과학·의학 분야에서 경시된 여성의 몸과 삶 관련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려는 시도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의학계 진출 여성 늘면 그간 경시된 여성의 몸·삶 관련 문제도 주목받을 것”

버클리 씨도 동의했다.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진출한 여성은 적고 ‘명예남성’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가 보스턴대 내 ‘과학기술 분야 석사과정 여성 연구자 모임(GWISE)’과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 내 여성 과학기술 석사과정 연구자들의 모임 ‘(NE GWiSE)’을 조직해 여성 연대를 도모하는 까닭이다. 버클리 씨는 “더 많은 여성들이 STEM 분야에 진출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누구나 에코 페미니즘 이슈를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면 자연스레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리라 믿는다”라며 대학과 지역 내에서 여러 ‘풀뿌리 에코 페미니즘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풀뿌리 운동이 번져가고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도화선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무수한 차별·혐오 발언과 성폭력 의혹으로 반발을 산 데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고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해 파문을 일으켰다. 버클리 씨는 “나와 내 주변인들도 여성·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시위를 조직하는 한편, 우리 지역부터 바꾸려 힘쓰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를 조직해 주 정부를 압박해 더 강도 높은 환경·인권 정책을 펼치도록 하는 식이다. 최근 여성 과학자 500명이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정치 활동에는 관심이 없던 내 어머니도 여성들의 조직적 활동에 영향을 받아 본인의 친구들을 모아 단체를 만드셨고, 부적절한 발언을 한 하원 의원을 끌어내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여성의 삶과 맞닿은 과학·환경 이슈를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해 각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대표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과학·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논의하고 행동하는 자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여성환경연대는 대학생들에게 기후 변화, 미세플라스틱 등 환경 이슈를 널리 알리고 문제의식을 갖도록 촉구하며 함께 해결해 나갈 방도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개막한 이화-루스 국제 세미나(ELIS)는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과 미국 비영리재단 헨리 루스 재단이 글로벌 여성리더 양성을 위해 공동 기획한 행사다. 2015년부터 매년 개최됐으며, 올해는 미국, 한국, 인도, 중국, 필리핀 출신 이공계 여성 대학원생이 방문해 총 18일간 토론, 워크샵, 문화·역사 탐방 등을 벌인다. STEM 분야와 여성을 주제로 한 포럼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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