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바뀌는 해의 자리와

햇살이 만들어 내는 풍경

 

 

하늘에는 구름도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리고 또 지우고 다시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늦여름 비 오고 난 후의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여 아름답다. ⓒ김경애 편집위원
하늘에는 구름도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리고 또 지우고 다시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늦여름 비 오고 난 후의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여 아름답다. ⓒ김경애 편집위원

서울의 하늘에도 해와 달이 뜨고 별이 떠 있고 구름이 모양을 만든다. 그런데 서울의 하늘은 높은 빌딩 사이로 조각나 있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은 보기 어렵다. 그 조각난 하늘에 구름은 더 작은 조각으로 떠 있다. 공해에 가려져 반짝이는 별의 수는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 그나마 서울 생활은 늘 바빠서 한강 변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것을 놓치고 살았고, 더구나 고개를 들어 조각 난 하늘이나마 쳐다보지 않고 살았다. 또 서울의 생활에서 비와 바람은 단지 우산을 가져갈 것인가, 어떤 신발을 신을까 또는 무슨 옷을 입을까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이 모든 자연의 현상은 시시각각 눈 앞에 펼쳐지고, 또 자연 현상으로부터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많은 것을 자연현상에 기대어 산다. 특히 햇볕은 시골에서 농사일을 좌지우지한다. 햇볕은 작물 성장에 핵심 요소인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고, 더 나아가 농부에게는 노동의 시간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들판이나 산 위로 떠 오르는 아침의 해와 마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해를 따라 하루 일상을 맞춰 나가면서 늘 함께한다. 그래서 자연히 시시각각 바뀌는 해의 자리와 햇살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늘 주시하게 된다. 아침 산책길에 걸어가면서 보는 산의 뒤편에서 올라오는 해는 산봉우리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뜬다. 그리고 구름에 가리고 안개에 가린 해는 모습을 바꾸면서 뜬다. 그 햇살 모양도 바뀌고 구름의 색깔도 바뀐다.

도시에서도 늘 해는 늘 뜨고 지지만 뜨고 지는 광경을 마음먹고 쳐다보기 위해, 연례행사로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가기도 하고 가까운 산 위에라도 올라간다. 달도 마찬가지로 대보름날과 추석이 되면 보름달을 본다고 일부러 아파트 베란다에라도 나가 빌딩 사이로 애써 달을 쳐다본다. 이 연례행사에서 우리는 해와 달에게 소원을 빈다. 해와 달은 우리들의 욕망을 투사하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새해 첫날 해돋이 행사는 해마다 점점 더 성황을 띄어가고 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다 보면 잉카인들이 해(태양)를 신으로 모셨다는 사실이 미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삶의 시작과 끝을 알았던 현자였던 것을 깨닫는다. 해에 의지해서 모든 생물이 일차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해는 우리의 삶이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다. 우리가 복을 빌지 않아도 해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내리고 있다. 해는 기복의 대상이 아니라 잉카인들이 했던 것처럼 추앙해야 마땅한 대상이 아닐까?

자주 하늘을 쳐다봐야지

그런데 인간의 발자국이 찍힌 달에게 소원을 빌어도 더 이상 들어줄 것 같지 않아 추석이나 대보름에도 아파트 밖을 나오는 수고도 하지 않고 달 보기를 포기해버렸다. 시골에서도 달집태우기 놀이도 없어졌는데, 달집태우기 놀이를 할 아이들도 없고 화재 위험 때문에 못 하게 하기도 한다. 달은 이제 시골에서도 가로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밤길을 밝히는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한밤에 온 천지를 따뜻하게 또 차갑게 밝히고 있다. 또 달은 여전히 날씨 예보자이다. 한여름의 붉게 떠오르는 달은 일기 예보를 듣지 않더라고 내일 날씨가 더울 것이라고 알려준다. 재작년 추석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는 저녁, 마을 정자에서 고향을 찾은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천문학 박사의 아내가 준비해온 포도주와 이탈리아 요리 안주를 먹으며 옛날이야기로 밤 깊은 줄 모르게 지냈다. 나는 그날 추석이 내 생에 제일 즐거웠던 추석날 중의 한날로 기억한다. 법정 스님은 수필집에 서 옛 중국 사람의 시를 읽다가 적잖은 충격을 받은 시 “꽃이 피고 지기 또 한해/평생에 몇 번이나 둥근 달 볼까”를 소개하셨다. 법정 스님은 산속에 사시면서도 둥근 달에도 무심하셨나 보다. 둥근 달은 인간이 발자국을 남겼으나 아직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경이롭다. 자주 하늘을 쳐다봐야지….

밤이 되면 시골의 하늘에는 별들도 촘촘하게 박혀 있다. 서울에서 종종거리며 살 때는 한밤에 잠을 깨면, 내일 낮에 졸려서 일에 지장을 받을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다시 잠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에는 보이지 않던 별이다. 한밤중에 깨어나 잠시 하늘을 볼 여유를 누려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때 별들이 자신을 보여준다. 반짝이는 별빛은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마음을 내려놓고 한밤중에 하늘을 볼 줄 아는 나를 격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늘에는 구름도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리고 또 지우고 다시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늦여름 비 오고 난 후의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여 아름답다. 구름이 멋진 그림을 그린 하늘 사진을 서울에 있는 선배에게 보냈더니 왜 하늘이 자신들 앞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이셨다. 거기도 있으나 보지 않을 뿐이 아닐까?

시골 생활에서 비 오는 날은 행복이 아득하게 밀려온다. 벌레 소리로 비가 오기 시작하는지를 안다.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딱 그치면 비가 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럼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그러다 벌레들이 다시 노래 부르기 시작하면 해가 다시 나온다는 신호이다. 비가 내리면서 처마를 거쳐 땅에 내리며 부딪치는 소리, 개울가에 물이 가득해 힘차게 내려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더욱 반갑다. 화초나 채소를 기르면서 며칠에 한 번씩은 비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집 마당의 꽃들과 나무들이 흡족해할 것 생각하면 기쁘다. 우리 집 텃밭의 채소들뿐 만 아니라 온 산하의 살아있는 것들이 축복받는 느낌이다.

 

하늘에는 구름도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리고 또 지우고 다시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늦여름 비 오고 난 후의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여 아름답다. ⓒ김경애 편집위원
하늘에는 구름도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리고 또 지우고 다시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늦여름 비 오고 난 후의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여 아름답다. ⓒ김경애 편집위원

비와 바람

나는 원래 비를 좋아했는데 영국은 겨울이 우기여서 겨울에 비가 추적추적 자주 내렸다. 영국은 겨울에 오전 10시나 되어야 해가 뜨고 오후 4시만 되어도 캄캄하다. 추운 겨울 긴 밤에 비가 내리고 바닷가 옆 언덕에 있었던 집에 바람이 불면 낡은 창문이 덜커덩 거리는 것이 지긋지긋해져서 비를 좋아하는 마음이 딱 가셨다. 그런데 시골에 와서 다시 비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무시로 내리는 비를 좋아한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걷이가 시작될 무렵 비가 내리길래 무심코 비 내리는 날이 좋다고 말했더니 이웃이 지금 내리는 비는 아무 소용없는 비라고 잘라 말했다. 비가 와서 땅이 질척이면 마늘 심기 어렵고, 가을걷이하는데 농기계가 논에 들어가기 어려워 벼 거두어들이기 어렵고, 양파 심기 위해 땅을 고르고 이랑을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벼 건조기가 없는 경우에는 길에 나락을 펴놓고 말리고, 들깨, 콩과 녹두, 메밀, 수수 수확한 것을 말려야 하는데 걸림이 될 뿐이라고 한다. 시골에는 홍수가 아니더라도 좋은 비 나쁜 비가 있다. 농사짓는 이웃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비가 좋다.

바람은 비와 함께 또는 홀로 찾아온다. 바람은 소리가 없다. 바람으로 흔들리는 잎 새와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치고 대나무 잎이 서로 부비면서 소리를 낸다. 우리 집에서 바람은 풍경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늘 잊지 않게 한다.

 

풍경 소리가 뎅뎅하고 날 때마다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풍경을 누가 머리로 부딪치면서 오나 하고/ 부엌에서 일하다 말고 돌아서서 내다본다. /그저 겨울바람 /봄바람만 /온다. //이제 풍경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도 돌아서서 내다보지 않는다./사전 통보 없이는 반가운 손님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런데 또 돌아본다, 혹시나 하고….//

 

태풍이 오는 날은 마루에 앉아 대나무가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는 장관을 보며 이 아름다운 모습을 나 혼자 보는 것이 아까워 멀리 있는 아이들과 친구들을 생각한다.

저절로 일어나거나 존재하는 것 즉 자연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서울에서 살 때는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아파트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여행을 늘 꿈꿨지만, 이제 이런 바람도 시들해졌다. 그냥 여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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