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6월 22일(금) 오후 정부서울청사 북카페에서 열린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관한 집담회에 참석해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차별 언어 경험과 성차별 언어 표현 개선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6월 22일(금) 오후 정부서울청사 북카페에서 열린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관한 집담회'에 참석해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차별 언어 경험과 성차별 언어 표현 개선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22일 여가부 주최

일상 속 성차별 언어 표현 릴레이 집담회 열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요?”

교사의 질문에 초등학교 5학년 A군과 B군이 답했다. “울고 싶어서 울었는데, 엄마 아빠가 ‘남자가 왜 이렇게 우냐’고 했어요. 기분 나빴어요. 남자도 자유롭게 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태권도장에서 겨루기하다가 발로 얼굴을 세게 맞아서 울었는데, 관장님이 ‘뭘 남자가 질질 짜냐, 남자가 울면 안 된다, 울지 말라’고 했어요. 억울하고 기분 나빴어요. 여자들이 울면 달래주는데....”

C양과 D양도 말했다. “할머니 댁에서 식사하는데, 제가 다리를 벌리고 앉았더니 할머니가 ‘여자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다리를 오므렸지만 기분이 나빴어요. 또 2학년 때 선생님이 ‘너는 여자애가 글씨를 깔끔하게 쓰지 않는다’라며 저를 자주 혼냈어요.” “길에서 어른들이 ‘여자는 깨끗해야 하고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차별과 혐오에 훨씬 예민하다. 안전망은 성글다. 학교, 학원, 집, 거리, 단톡방, 유튜브 영상 속에는 ‘남자는-’, ‘여자는-’이라는 말들과 혐오 표현이 가득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2일 연 ‘일상 속 성차별 언어 표현 릴레이 집담회’에 모인 서울·경기 지역 초등학교 5학년 학생 4명과 담임교사 2명이 들려준 얘기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이 주재한 이 날 간담회는 초등학생들의 일상에 뿌리내린 다양한 성차별·여성비하 표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자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페미니스트 교사 모임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들이다. 아이들과 다양한 차별·혐오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왜 그런 말들이 남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수업을 학기 초마다 진행한다. 아이들은 욕설이나 차별·혐오 표현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서로 그런 말을 주고받다가 싸우게 된다”고 했지만, “그런 말이 유행하면 안 쓰던 애들도 결국 하게 된다” “욕설 잘 쓰는 게 말발 센 것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우리 반에서도 ‘응 니며느리~’ 이런 말을 쓰나요?” “네. 다른 반 아이들도 써요. 별 의미 없이 반박하려고 하는 말인데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B군)

“우리 저번 현장학습 때 OT 지도자가 ‘보이루~’ 했잖아요. 기분이 어땠어요?” “다른 형들도 그런 말을 쓰는데 듣기 좋지 않아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보이루’는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말이래요.”(A군) “근데 나쁜 말이 퍼지면 안 쓰던 애들도 하게 돼요.”(B군)

유튜브는 초등학생들이 이런 최신 차별·혐오 표현을 접하는 주된 통로다. ‘보겸’, ‘김왼팔’ 등 유명 유튜버 중에는 욕설이나 차별·혐오 표현을 자주 사용해 유행어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남학생들은 “유튜버들이 심한 욕설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보다가 꺼 버렸다”면서도 “욕설을 하면 속이 풀리는 느낌이 있다” “바른말 고운말을 쓰는 유튜버는 재미없다”고도 했다. “유튜버들은 나를 이긴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고, 더욱 창의적인 나쁜 말을 경쟁처럼 만드는 것 같아요. 남자애들이 게임 채널을 더 많이 보니까, 욕설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 같아요.”(A군)

온라인 게임은 성차별과 언어폭력의 무법지대에 가깝다.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등 게임을 하다 보면, 남자들이 여자랑 같은 팀이 됐다고 심한 욕을 하거나 아예 나가 버리기도 해요. 남자가 조작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고르면 밀어주면서, 여자가 고르면 ‘다른 캐릭터를 골라라’며 욕해요. ‘초딩 꺼져’라고 욕하기도 해요.”(A군) “(게이머 성차별) 그런 것 때문에 온라인 게임은 안 해요.”(C양)

남자아이들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믿음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거운 게 있었는데, 힘센 여자애는 한 번에 들고 저는 겨우 들었어요. 걔랑 다른 여자애들이 제게 ‘남자가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했어요.” A군에게 담임교사가 물었다. “왜 남자는 약해 보이면 안 될까?” “어른들이 ‘남자는 여자보다 세야 한다’고 말하니까요.” “어른들의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피해를 본 거네?” “네.” “나중에 A에게 아들이 생겼어. 아들이 조금만 건드려도 운다면 어떻게 할 거야?” “달래줘야죠.”

초등학교에는 성차별적 ‘남녀학생 출석번호 분리’ 관행이 아직 남아있다.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41번부터로 정하는 식이다. 일부 교사들의 문제 제기 끝에 D양네 학교는 내년부터 이 순번을 바꾸기로 했다. 학생들은 “출석번호 분리는 순서를 재는 느낌이라서 차별적이다. 성별을 떠나 가나다순으로 출석번호를 정하면 공평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백 장관은 “저도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제 치마를 엎는 남학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인터넷 방송 BJ가 쓰는 말을 따라 쓰는 게 재미있을 수 있지만, 남을 깎아내리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가부는 이날 집담회를 시작으로 중·고등학생, 청년 등이 겪은 성차별 언어표현 경험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집담회 내용은 연구용역으로 추진 중인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 현황 연구’에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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