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안하고 숏커트하며

‘꾸밈노동’ 멈추는 여성들

1020 여성 중심으로 확산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 넘어

안해도 될 권리 찾아 나서

가부장제 탈주로 의미 넓혀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또 다른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aenal_y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또 다른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aenal_y

여성의 외모에 대한 가부장적 잣대에 저항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자는 목소리가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10~20대 여성들은 화장을 안하는 것을 넘어 화장품을 부수고,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이를 ‘인증’한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탈코르셋_인증’ 해시태그를 달고 쏟아진다. 여성의 체형 보정속옷을 말하는 ‘코르셋’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을 뜻하는 상징과도 같은 표현이다. ‘탈코르셋’이란, 짙은 화장과 날씬한 몸매, 긴 생머리 등 사회가 강요하는 가부장적 억압, 즉 코르셋에 더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이는 신조어다. 노메이크업과 숏커트는 지금 확산되는 탈코르셋 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SNS에는 ‘#탈코르셋_인증’ 해시태그를 단 직접 자른 긴 머리, 쓰레기통에 버린 화장품, 숏커트를 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쏟아진다. 유튜버(youtuber·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동영상으로 탈코르셋을 인증한다. 화장법 등을 공유하던 뷰티 유튜버가 탈코르셋 인증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팬층이 두터웠던 뷰티 유튜버 ‘데일리 룸 우뇌’는 “화장과 긴 머리에서 벗어나 사회가 씌운 ‘꾸밈 노동’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탈코르셋 운동을 하려 한다”며 뷰티 영상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꾸밈 노동은 그동안 자기만족으로 여겨졌던 여성들의 치장을 노동 또는 노역으로 보는 신조어다. 또다른 뷰티 유튜버 ‘배리나’도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탈코르셋 대열에 합류했다.

유튜버 ‘미미’(23)도 최근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탈코르셋 인증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평소 끈적끈적한 장난감인 슬라임을 이용해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을 올리는 미미는 평소 사용하던 화장품을 부숴 슬라임을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은 곧바로 온라인 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31만명이 시청했다. 미미는 탈코르셋 인증을 한 이유에 대해 “저도 ‘#탈코르셋_인증’ 해시태그를 보고 용기를 얻어 숏커트를 했기 때문에 화장품을 버리는 것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영상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특히 그는 “트위터에서 10대 학생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다이어트를 하며 코르셋을 조이며 사는 모습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제 유튜브 채널 구독자의 90%가 18~24세 여성이고, 초·중학교 여학생 사이에 슬라임이 유행이라 ‘탈코르셋’을 알리는데 슬라임 영상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르셋을 벗고 나서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만족해했다. 렌즈 대신 안경을 끼고, 외출 준비 시간도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영상을 본 주변 친구들과 10대 여성들이 “탈코르셋 하는데 힘을 얻었다”고 말하는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미는 “여전히 ‘여자의 화장을 예의’라고 하는 사회에서 코르셋을 벗는게 쉬운 여성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여성인권을 위해 코르셋을 벗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튜버로 활동하는 ‘미미’는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탈코르셋 인증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평소 끈적끈적한 장난감인 슬라임을 활용한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을 올리는 미미는 평소 사용하던 화장품을 부숴 슬라임을 만들었다. ⓒ유튜버 ‘미미’
유튜버로 활동하는 ‘미미’는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탈코르셋 인증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평소 끈적끈적한 장난감인 슬라임을 활용한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을 올리는 미미는 평소 사용하던 화장품을 부숴 슬라임을 만들었다. ⓒ유튜버 ‘미미’

10대 청소년 90여명으로 구성된 ‘평택시 청소년 페미니즘 연합동아리’는 지난 2일 동아리 페이스북에서 탈코르셋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착용하거나 머리를 길러야 할 필요가 없고, 화장을 할 자유와 화장을 하지 않을 자유 모두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리 회원인 최지연(17)씨는 “탈코르셋은 단순히 숏컷을 하고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냥 긴 머리가 좋으면 하는거고, 화장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가 정한 ‘여성스런’ 외모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숏커트를 하고 화장을 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주변에서 ‘실연 당했냐’, ‘어디 아프냐’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편하고 시간도 절약된다고 했다.

최지수(19)씨도 “모두에게 탈코르셋이 똑같을 수는 없다”면서 “애초에 탈코르셋이 완전히 규정된 개념이 아니듯, 최소한 내가 귀찮거나 바쁠 때 꾸밈노동을 하지 않는 것, 혹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노동을 자각하고, 이에 저항하고자 하는 것 모두 탈코르셋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요구하기에는 여성들은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운동이 최근 시작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68년 미스아메리카 대회 반대 시위가 주류 사회에 소개되며 여성해방운동의 본격적 시작을 알렸다. 400여명의 젊은 여성들은 ‘자유의 쓰레기통’(freedom trash can)에 브래지어와 화장품, 하이힐 등 여성을 억압하는 물건을 버리며 성 문제를 공적인 아젠다로 끌어 올렸다. 한국에서는 지난 1980년대 여성을 상품화하고 가부장제의 미적 기준을 표방한 ‘미스코리아대회’를 폐지하자는 운동이 시작됐고, 2002년 공중파 중계방송 중단이라는 성과도 얻었다. 이후 코르셋 벗기 운동은 이어져왔다. 기존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져왔지만, 지금은 평범한 10~20대 여성 주축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메갈리아’의 등장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각성’한 여성들이 그 중심에 있다. 특정 단체나 배후도 없이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주동자라는 뜻이다.

강남식 젠더와인권연구소 소장은 “과거에는 운동권도 노출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었던 반면, 순결이데올로기와 결혼이데올로기가 무너진 상황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젠더연구자인 태희원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은 탈코르셋 하는 여성들이 코르셋과 억압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태 연구위원은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문제제는 매우 선명하다”며 “외모 치장을 자기개발, 자기관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코르셋’이라고 반격하고, 코르셋에 대해 ‘화장하고 꾸미는 건 남자들 보라고 하는게 아니라 자기만족이다’라는 반응에 대해서도 사회적 억압을 내면화한 것이라는 지적이 여성 내부에서 나온다는 점도 과거와는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사회에서 말하는 ‘여자됨’을 포기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여자됨’을 결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데, 지금의 탈코르셋 운동이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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