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자, 성평등적 소양 갖추고

성비도 고려해 구성 안배해야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은행연합회는 18일 은행장들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은행권 채용 절차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의결했다. 모범규준은 임직원 추천제 폐지, 성별, 연령, 출신학교, 출신지, 신체조건 등 지원자의 역량과 무관한 요소로 인한 차별을 금지,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모범규준 자체는 자율규제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으나, 전국 6대 시중은행의 채용 비리를 8개월간 수사한 끝에 12명이 구속기소 되는 등 총 38명이 재판에 넘긴 초유의 사태에 대한 은행들의 자발적인 후속 조치로 강행규정으로 이행될 거라고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이사회 전에 은행연합회에 모범규준에 ‘채용 성비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담은 의견서를 전달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은행권 채용 성차별을 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조치들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 수사로 밝혀진 은행 채용 비리의 실상을 단순히 ‘천태만상’이라고 묘사하기에는 ‘성차별’은 은행 채용 비리의 가장 큰 몸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채용 비리 유형 가운데 성차별 채용은 전체 368건 가운데 225건으로 약 61%에 해당한다. 하나은행은 2013~2016년 신입 행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사전에 남녀 채용비율을 4대 1로 못 박아 놓았다. 남성을 더 많이 채용하려고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 커트라인이 남성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다. 서울지역 여성 커트라인은 467점으로 남성 커트라인 419점보다 48점이 높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실력이 안 되는 남자를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뽑았다. 남성을 채용하기 위해서 점수 조작까지 했다. 국민은행은 2015년 신입 행원 채용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여 남성 지원자 113명의 점수를 올리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춰 남성을 합격시켰다.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하여 재판에 넘겨졌다.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 회원들이 4월 24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 하나은행 앞에서 채용 성차별 기업에 대한 항의와 채용 성차별 철폐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 회원들이 4월 24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 하나은행 앞에서 채용 성차별 기업에 대한 항의와 채용 성차별 철폐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은행권 채용 성차별은 대학 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선 지 이미 오래되었음에도 왜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주변부적 지위가 개선되지 않는가를 설명해준다. 2017년 12월 <시사인>이 보도한 주요 은행 5곳(KB국민·신한·우리·KEB하나·IBK기업)의 직급별·성별 채용 및 승진 현황에 따르면 주요 은행 5곳의 성비는 비슷하거나 여성이 많다. 그러나 고임금 고위직은 남성이 독식하고 여성은 저임금 창구 업무에 집중되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2015~2016년 정규직 신규 채용에서 여성은 29.9%에 머물렀는데, 하나은행은 여성 비중이 18.4%로 가장 낮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은행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18.4%의 비밀은 바로 하나은행이 사전에 정했다는 남녀 채용비율 4대 1에 있었다.

채용 과정은 선발 기준과 내용을 외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성차별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다. 이번 은행연합회가 도입하기로 의결한 모범규준은 편견이 개입되는 차별적 요소를 제외하고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채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지만, 과연 채용의 전 과정에서 여성이 직무능력만으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 의심의 눈을 거둘 수 없다. 학력·지역·연령·성별 등 차별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정말 ‘성별’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서류 지원 단계에서 성별을 기입하지는 않지만, 면접 단계에서 성별은 투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차별은 다른 차원의 차별과 달리 좀 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성차별의 소지를 없애려면 심사자가 성평등적 태도와 소양을 갖춰야 하고 심사자의 구성도 성비를 고려해 안배해야 한다.

채용 절차의 공정성에 한치의 부끄럼이 없다면 채용 성비를 공개하기를 바란다. 2016년 외무고시 합격자의 여성 비율은 70.3%, 행정고시 합격자의 여성 비율은 41.4%였다. 행정고시 합격자 여성 비율은 최근 5년간 최저 수치였다고 한다. 채용 성비 조작이 없다면 은행 합격자 여성 비중도 그 정도 되리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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