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도지사 ‘0’명

여성 후보 조차 ‘전멸’

‘중년 남성’ 독점 정치판

‘페미니즘’이 뒤흔들어

 

 

12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열린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학생들에게 선거 명함을 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2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열린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학생들에게 선거 명함을 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13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결국 ‘중년 남성’ 독무대였다. ‘촛불혁명’ 이후 첫 전국 단위 선거인만큼 촛불광장에서 나온 다양한 의제가 선거 공약으로 제시될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성평등 민주주의를 요구해온 여성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광역단체장 가운데 여성 후보는 사실상 ‘전멸’ 수준이었으며 성평등 의제는 또다시 주변부로 밀려났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져도 유독 정치는 소위 ‘586’의 전유물처럼 남았다. 50대 중산층 남성이 독점한 정치판에서 그 안에서 여성 정치인의 성장가능성은 너무나 미약했다. 1995년부터 7번의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광역단체장으로 선출된 여성은 없다. 이번만큼은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해야 한다는 여성단체와 여성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더불어민주당은 17개 전국 시·도지사 후보 모두를 남성으로만 채웠다. ‘더불어남자당’이냐는 냉소가 쏟아져도 꿈쩍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여성은 8.5%인 6명에 그친다. 서울시장 민중당 김진숙, 대한애국당 인지연, 녹색당 신지예 후보, 부산시장 정의당 박주미 후보, 세종시장 자유한국당 송아영 후보, 제주지사 녹색당 고은영 후보 등이 그들이었다. 기초단체장 후보 중 여성은 4.6%(35명)로서 광역단체장보다도 낮았다.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며 여성들의 저항이 너무 과격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도 낳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기성 정치판은 여성 이슈에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후보자 상당수는 ‘여성정책’이 아예 없거나 단편적인 정책만 내놨다. 오히려 ‘혐오’를 정치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고, 당선 유력 후보를 둘러싼 “광범위한 의미의 미투” 의혹도 제기됐으나 '진보에 흠집 금물' 이라는 대의명분에 압도되면서 해프닝 수준으로 끝났다.

그러나 사막에도 꽃이 핀다.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광역단체장 후보의 등장으로 온라인은 페미니즘 열기로 뜨거워졌다. 녹색당 신지예(27) 후보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하고 “백래시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여성혐오와 소수자 차별을 없애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내선 슬로건 만큼 주목받은 것은 선거 벽보였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담은 벽보는 한 유명 남성 변호사에게 “시건방진 눈빛”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는 비난을 받았고, 서울 27개 지역에서 훼손된 채 발견됐다.

페미니즘 정치를 향한 백래시(backlash·반격)였다. 그러나 반격이 거세질수록 신 후보를 향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와 연대는 더욱 커졌다. SNS에서는 신 후보를 지지한다는 뜻을 담아 SNS 프로필 사진을 일명 ‘시건방진 포스터’로 바꾸는 움직임이 일었고, 십시일반 정치후원금을 보내는 이들도 늘어났다. 신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1.7%(8만2874표)의 득표를 얻어 전체 4위를 차지했다.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 후보에 이은 것으로, 원내 정당인 정의당 김종민 후보(1.64%)를 앞지르는 신선한 기록을 만들었다.

신 후보는 그동안 정치가 대변하지 못한 혹은 대변하지 않은 2030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한다. ‘성평등 이행각서 도입’, ‘불법촬영 피해자 지원조례’, ‘낙태죄 폐지 찬성’ ‘임신중지 여성 지원’ ‘젠더건강센터 설립’ 등 그가 내놓은 공약에는 모두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여성을 향해 ‘네가 나다’라며 분노했던 여성들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 참석한 빨간 옷의 여성들, ‘낙태죄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23만명, ‘미투’를 외친 성폭력 피해자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의미로 ‘위드 유’를 외친 여성들이 절규가 담겨 있다.

'소란' 없이 민주주의도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론장에서 각자의 주장을 관철하는 소란스런 과정은 존중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더 이상 ‘인물이 없다’는 정치권의 해묵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지방선거는 끝이 났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풀뿌리 지방자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페미니즘 정치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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