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소위, 카톡방 성폭력 사건 공론화

서울대·고려대·단국대 등 6명 연루

모텔 사진 단톡방에 올리자

성관계 영상 인증 요구 빗발

여성 지인들 사진 공유하며

몸매 평가, ‘따먹을 X’ 취급

“이거 성적 대상화인거 알지”

성폭력 가해 인지하면서도

제지 않고 오히려 동조

가해자들 “친구끼리 대화…

사생활 비밀 보장돼야“ 주장

일부 가해자 부모들

“손해배상 청구 가능” 위협

 

30일 오전 학생들이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대학가 일대일 카톡방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 자보를 보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30일 오전 학생들이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대학가 일대일 카톡방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 자보를 보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대학가에서 또다시 ‘카톡방(카카오톡 대화방) 성희롱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서울대를 비롯해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남학생 6명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들은 단톡방(단체 카톡방)뿐만 아니라 두 사람만 대화에 참여하는 일대일 카톡방에서 자신의 연인을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외모를 품평했으며 성적 대상화했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언어적 성폭력’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대일 카톡방에서의 대화는 ‘존중받아야 할 사생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는 5월 30일 대자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남학생들이 단톡방과 일대일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일부를 공개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들은 서울대를 비롯해 경희대, 고려대, 경기대, 단국대, 서울시립대 소속 6명이다.

학소위에 따르면 가해자A는 지인들과의 일대일 카톡방과 페이스북 메시지 대화에서 자신의 연인인 피해자X의 사진을 공유하며 성적 대상화하고, 피해자 X에 대해 성적인 발언을 하는 등의 언어적 성폭력을 가해했다. 가해자A와 또 다른 가해자B는 일대일 대화에서 피해자X와 아는 형의 고향이 같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구멍동서’라고 표현했다. A는 C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연인과의 성생활을 상세히 공유했고 D와의 대화에서는 “OO 먹으려고 발정났다”는 대화를 나눴고, D는 “나랑 잘 여자 하나만 넘겨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A와 D, E, F가 함께하는 단톡방에서도 언어적 성폭력은 계속됐다. A가 ‘모델 방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자, D와 E는 “동영상 ㄱ(고)”라고 불법촬영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F 역시 “빨리 인증해” “이번에 동영상 ㄱ” “섹스함?”이라고 말했다.

피해자X는 지난해 11월 A의 노트북을 빌렸다가 A가 지인들과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나눈 대화를 우연히 보게 됐다. 남자친구가 둘만의 사생활을 지인들과 공유하며 성희롱한 사실을 알게 된 X는 A에게 휴대전화를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카톡 대화방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간 것을 목격했다. X는 A의 동의 하에 대화 내용을 캡처하거나 ‘내보내기’ 기능으로 자신의 휴대전화로 보냈다. 대화 내용을 확인한 X는 자신을 향한 성희롱에 충격을 받고 가해자 B, C, D에게 사과문을 요구했다. X는 일부에게 사과문을 받았으나, “카톡방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사건을 공론화하기로 결정하고 가해자B가 소속된 서울대 인권침해 관련 기관에 사건을 접수했다.

서울대 학소위는 지난 1월 사건을 접수한 뒤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2018-B1 사건’으로 명명하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했다. 대책위는 공론화 결정 이유에 대해 “신고인은 피해자X이지만, 그외에도 신상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수많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적 성폭력 행위가 명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책위가 가해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모두 당사자들이 한 발언이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책위는 “가해자들이 ‘단톡방이 아닌 일대일 카톡방이니 괜찮다’는 안일함 속에서 거리낌 없이 여성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몸매를 평가하고, 성적 대상으로 취급했다”며 “소위 ‘남톡방(남성들 간의 단톡방) 성폭력 사건’이 여럿 공론화되면서 남톡방 구성원들이 발언에는 조심했을지 모르나 문화는 바뀌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가해자들은 대책위에 “단톡방도 아니고 단둘이 사적으로 나눈 카톡을 다른 사람이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사생활의 비밀도 보장돼야 하는 인권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다른 가해자는 “언어적 성폭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대일 대화에 있어서 선택되는 언어는 그 둘 사이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면서 “두 사람이 얘기할 때 사회의 통념을 벗어나는 상황이 있을지라도 사실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의 발언이 ‘언어적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A는 일대일 카톡방에서 성희롱 발언이 나오자 각각 “우리 카톡으로 이런 얘기 이제 하지 말자” “이거 다 성적 대상화인거 아시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일대일 카톡방에서도 “신고먹고 고소미 먹어도(고소 당해도) 할 말 없는 대화 오지구먼”이라고 적어 일대일 카톡방에서 이뤄진 대화가 성희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는 ‘일대일 카톡방은 사생활’이라는 주장에 대해 “남톡방 성폭력 사건 때마다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명이 있던 카톡방에서는 ‘언어적 성폭력’으로 분류되던 행위가 일대일 카톡방에서는 ‘존중받아야 할 사생활’로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다”며 “일대일 카톡방이든, 단톡방이든 그러한 행위는 언어적 성폭력이며 전형적인 ‘카톡방 성폭력’ 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현재 가해자들은 말로는 “반성한다”면서도 대책위 측에는 ‘학소위가 사법 기구도 아닌데 왜 공론화하냐’고 항의하고 있다. 일부 가해자 부모는 학소위 측에 “학부모들과 공동 대응하겠다, 법적으로 검토하고 손해배상 청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피해자를 폄하하고 가해자의 심리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대책위에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피해자의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학소위 측은 대학가 카톡방 성폭력 근절을 위해 가해자가 소속된 각 학교의 성폭력·인권침해 관련 기관에 사건을 신고하기로 했다.

 

‘일대일 대화’도 공연성 인정

대학가 카톡방 성희롱 사건은 2015년 처음 수면 위에 오른 뒤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 대부분 솜방망이 징계로 그치면서 일명 ‘남톡방’에서의 성희롱은 ‘음담패설’이나 ‘친구끼리 할 수 있는 야한 얘기’ 정도로 취급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남성들은 ‘단톡방’에서의 발언은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일대일 카톡방은 ‘사적 공간’이며 사생활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오간 대화라도 온라인에서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며 단톡방 성폭력 사건은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강간문화’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온라인에서 단둘이 나눈 대화라도 카톡이라는 온라인 메신저의 전파력과 파급력은 강력하다. 온라인상 대화는 일상을 반영하는 만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따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불법촬영물을 제작, 유포해 타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포르노 사업자나 일부 헤비 업로더에 의해 이뤄진 반면, 지금은 카톡 등 SNS를 통해 누구나 타인을 성적 대상화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유희거리(콘텐츠)로 삼고 있다”며 “특히 이러한 행위는 ‘친밀한 관계’인 지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카카오톡은 대화를 나누는 ‘메신저’를 넘어 사진, 동영상 등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대한 미디어 창구가 됐다”며 “대화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인식 변화, 법적 제재 마련과 함께 카톡 대화 중 타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대화가 오갈 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일대일 카톡방도 단톡방과 마찬가지로 전파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된다. 2008년 대법원은 인터넷 블로그의 비밀 대화방에서 일대일로 타인을 비방한 사건에 대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을 충족한다”며 불특정 또는 다수의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공연성을 인정했다. 지난해에도 법원은 한 야구선수가 애인에게 카톡으로 유명 치어리더를 험담한 사건에서도 공연성을 인정했다. 일대일로 주고받은 대화라도, 전파 가능성이 있다면 충분히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할 수는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화 내용이 ‘성폭력’에 해당하더라고 성범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지난해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카톡 등 모바일 메신저에서의 성희롱을 법적으로 처벌하자는 내용의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으나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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