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영상 '몰래' 유포한 남친

현행법으론 처벌 불가

성폭력처벌법 14조 개정해야

 

1997년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에서 ‘도난 방지’를 이유로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사건이 있었다. 이는 ‘몰카’ 설치가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몰카 설치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계기로 ‘카메라등이용촬영죄’ 조항이 마련될 수 있었다. 이처럼 반성폭력운동의 역사는 성폭력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사건을 성폭력으로 인정하라는 투쟁의 역사였다.

우리는 소라넷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만행에 충격을 받았고, 공중화장실에서는 몰카 걱정에 갈 때마다 나사 구멍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도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낸 덕분에 이제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하고, 유포하는 것을 성폭력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이버 성폭력 피해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진영(가명)씨는 20살이 되어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는 35살이었고 나이차이는 많이 나지만 그만큼 진영씨를 예뻐해주고 보살펴줬다. 그는 진영씨에게 ‘당신의 이쁜 몸을 보고싶다’, ‘다른 여자의 몸을 보며 자위하는 걸 원하지 않지 않느냐’, ‘나를 사랑한다면 이것만 보여달라’고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허벅지, 허리를 보여달라고 했다가 점점 높은 수위를 요구했다. 나중에는 나체 사진, 성기에 손을 대고 있는 사진 등을 요구했다. 진영씨는 조금 꺼려지기는 했지만 남자친구가 이 사진을 어디에 퍼트릴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사진을 보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아 보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진영씨는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진영아, 이거 너 같은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와있어. 근데 이거 니가 찍은거야?”(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로 접수된 피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현행 법상으로 진영씨는 남자친구가 유포한 증거를 확보해도 이를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성폭력처벌법 제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촬영 대상이 “다른 사람의 신체”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는 그 사진이 동의 없이 유포되어도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이버성폭력의 유형은 ‘카메라등이용촬영죄’에서 다루는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진영씨의 사례처럼 본인 신체를 촬영한 경우 뿐만이 아니다. 본인이 SNS에 올린 사진을 나체사진과 합성하여 업로드하거나, 얼굴 표정을 일명 ‘아헤가오(강간을 당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표정으로 주로 눈동자를 위로 한 채 볼이 발갛고 침을 흘리는 표정, 일본에서 유래)’ 형태로 편집해 유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편집된 사진은 성폭력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피해촬영물이 업로드된 컴퓨터 화면을 촬영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의 ‘신체’”로 처벌 범위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미지를 재촬영 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사이버성폭력은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빠른 속도로 변모해왔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새롭게 등장한 성폭력 유형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유형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성폭력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20대 국회에는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이라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한 경우에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무려 4개가 발의돼있다. 그러나 아직 어느 하나도 통과되지 못한 상황이다. 제도가 현실을 뒤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부지런히 따라가지 않으면 여성들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성폭력처벌법 제 14조 개정안은 지금 당장 통과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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