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9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문 후보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9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문 후보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인권단체, 인식개선 장기전

혐오 발언한 후보자 신고게시판 신설도

소수정당 후보들 성소수자 공약 앞다퉈 발표

국가인권위원회·지방선거관리위원회 나서야 

선거철이 되자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력이 차별 조장을 넘어 낙선운동까지 천명하면서 사상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반인권적 행위에 정치권이 동조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행태에 이제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20일경 각 지역의 단체장, 교육감 후보 선거사무소에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혼 허용 여부 등을 묻는 정책질의서가 도착했다. 발송한 단체 이름은 ‘건강한 서울만들기 범시민연대’ ‘건강한 전북만들기 범도민연대’ 등으로 각 지역의 이름을 넣은 동성애 혐오단체였다.

질의 내용은 10가지 문항으로 이뤄져있다. 모두 객관식이며, 반대·유보·찬성에 표시하게 돼 있다. 질문 내용은 철저히 반동성애에 초점을 맞췄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군대 내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 차별 금지' 문구를 삭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병관리본부가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련성을 홍보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이다.

그런가하면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국민연합(이하 동반연)’은 5월 11일 지방선거 후보자의 동성애 입장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방인권조례 폐지를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성애·동성혼에 명백하게 반대한다고 밝힌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중 10명의 이름을 발표했다. 전체 후보자수가 5월 20일 기준 광역단체장 73명·교육감 후보 71명(사퇴 제외) 가운데 6.9%다.

명백하게 반대한다고 응답한 후보들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거나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광역단체장 후보는 김문수(서울)·서병수(부산)·김기현(울산)·김태호(경남)·박경국(경북)이며, 교육감 후보로는 곽일천(서울)·임해규(경기)·고승의·박융수(이상 인천)·김성진(부산) 등이 동성애·동성혼에 명백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김영록 전남도지사 후보도 10개 문항 중 각각 8개와 6개에 이들 입장에 동조하는 답변을 보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일부 보수기독교단체가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인권단체들과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이하 혐오대응 네트워크)’를 발족해 대응해나가고 있다. 인권운동+, 인권중심사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전국의 인권시민단체 및 풀뿌리 지역모임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14일 발족식을 했고 5월 말 전국 각 지역에서 혐오없는 투표 시민선언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혐오대응 네트워크는 OO만들기 연대가 설문지를 배포하자 ‘인권의 찬반을 묻는 질문’이라고 규정하고 후보 선거사무소에 연락을 취해 답변을 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작업을 벌였다. 단체는 “정책 질의를 빙자해 혐오로 가득 찬 질의서를 후보들에게 보내고 답변을 요청하는 행위는 민주주의 선거를 방해하는 혐오 선동일 뿐”이라면서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고, 상호 존중과 공존의 가치를 뿌리로 하고 있다. 성소수자도 민주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기독교의 표를 의식해 별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의사를 나타냈던 정치권에서는 올해 소수정당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위기도 달라진 점이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와 김종민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21일 ‘서울특별시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 제정 공약을 공동으로 발표하는 이례적인 모습도 연출했다. 조례 취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앞서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동성애 혐오 단체의 설문조사 답변서를 가지고 기독교연합회관을 직접 방문해 제출하면서 항의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대전에서는 성광진 대전시교육감 후보와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이 지역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협약식을 체결하기도 했다.

앞서 홍성규 민중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이해 성소수자공약 7가지를 발표했다. △인권조례 제정 △성소수자 교육정책 정비 △공공기관과 국공립대학시설 등에 성중립 화장실 설치 △성별 표기 주민등록번호체계 개편 △동성 간 혼인과 파트너십 인정 등이다.

동성애 혐오 단체의 낙선운동 대상이 된 홍 후보는 “낙선후보로 지정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차별과 혐오의 대명사로 쓰이던 ‘종북 게이’라는 단어에서 ‘종북’이라는 말이 소멸되고 있고, ‘게이’라는 말만 남았다”면서 “한국당을 비롯한 극우세력들이 혐오의 대상과 미움의 대상을 찾아 성소수자(게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움직임은 이번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지난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홍준표 후보는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에 법적 금지가 아니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 직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독교 모임에 참석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성애법, 차별금지법, 인권 관련 법, 그리고 이슬람 문제, 저희는 결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올해는 그 양상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서 낙선을 거론하고 충남에서 시작된 인권조례 폐지 운동을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충남도에서 인권조례가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충북 증평군과 부산의 여러 기초단체 등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하거나 조례 자체를 폐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혐오대응 네트워크 측은 기초단체가 많다보니 전부 파악을 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혐오대응 네트워크 측은 동성애 혐오세력에 대응해 당장 선거기간에 벌어지는 행태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인식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혐오세력의 성소수자 차별과 배제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반인권적 행동이며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혐오대응 네트워크 측은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내에 혐오 발언을 하는 후보자를 신고할 수 있도록 게시판이 마련돼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 지방선거관리위원회가 나서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법적 규제로 모든 것을 하는게 옳은 방법은 아니기도 하고 처벌기준을 만드는 게 쉽진 않다”면서 “선거 공보물이나 후보자 발언에 인권침해적 요소가 없어야 함을 강력하게 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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