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 사이에서 디지털 성폭력을 ‘놀이’로 여기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온라인상 관심을 끌기 위해 불법촬영·음란물을 이용하거나, 아예 직접 만들어 퍼뜨리기도 한다. 

범죄를 장난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10대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온라인엔 이들의 ‘자극제’ 노릇을 하는 폭력·혐오 콘텐츠가 넘쳐난다. 기성세대가 저지른 디지털 성폭력이 고스란히 10대에게 대물림되는 중이다. 성인들의 왜곡된 성문화를 돌아보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1. 10대들이 직접 불법촬영 범죄를 저질러 온라인에 유포하는 일이 늘고 있다. 2016년, 한 남자 초등학생은 잠든 누나의 발목과 손목을 테이프로 묶고, 누나를 깨워 당황해하는 모습을 비추고는 “좋아요와 구독 버튼을 눌러달라”고 말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어느 10대 남성 BJ는 지난해 9월 방송 중 반바지를 입은 어린 여동생의 하반신을 비춘 후 동생의 배, 허벅지, 다리 등을 수십 초간 찰싹찰싹 때렸다. 채팅창엔 ‘다리 만지네 개부러워ㅠㅠ’ ‘하악하악’ ‘따먹고싶다’ 등 성희롱 발언이 쇄도했다. 지난해 6월, 한 남자 초등학생은 “구독자 1000명을 달성하면 우리 엄마 엉덩이를 보여주겠다”더니, 실제로 엄마로 보이는 여성의 엉덩이를 5초가량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이외에도 10대 남자아이가 잠든 여동생의 이불을 들춰 몸을 보여주는 영상, 엄마가 옷 갈아입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영상 등이 모두 온라인상 ‘전체 공개’로 올라와 있다.

#2. 요즘은 마음만 먹는다면 초등학생도 인터넷에서 쉽게 불법촬영·음란물을 보고 공유할 수 있다. “48세 85B컵을 가진 엄마의 속옷입니다.” “팬티만 입고 자던 누나를 몰래 찍어봤습니다. 팬티 갈아입을 때 팬티도 몰래 가져왔습니다.” “서울 사는 고1 여동생의 속옷입니다. 아직 처녀이고요.” 인스타그램·텀블러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판치는 불법촬영·음란물이다. 가족의 신체나 속옷 사진에 성희롱이나 모욕적 표현을 덧붙여 공유하는 이들도 있다. 10대들이 이런 범죄에 무분별하게 빠져들기도 한다. 서울 마포구 학부모 모임 ‘MMDC’ 회원 조민혜(가명·37) 씨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인터넷에서 ‘여동생 몰카’를 보더라. 친구 형이 재미있는 영상이라며 보여줬다고 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미디어 보며 자라는 10대들

자극적·폭력적 콘텐츠도 

‘조회수 보장’되면 OK

요즘 10대들은 문자보다 동영상과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TV를 가장 적게 보는 세대이자, 유튜브·트위치 등 인터넷 방송을 가장 많이 보는 세대”(김애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다. 지난해 13∼24세의 유튜브 이용률은 86%로 다른 세대보다 10%P 이상 높았다. (닐슨코리안클릭, ‘2017 세대별 모바일 앱 이용 현황’) 

온라인 미디어는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자극적이고 편향된 콘텐츠도 쏟아지는 중이다. 게시물 조회수나 시청자 참여도가 수익을 결정하는 구조라서 더 그렇다. 인터넷 방송·SNS 계정 등 운영자들이 관심을 끌고자 디지털 성폭력, 초상권 침해, 명예훼손, 불법촬영 등을 저지르기도 하는 배경이다. 

특히 ‘몰카’는 ‘조회수가 보장되는 인기 콘텐츠’다. 잠든 동생에게 모형 바퀴벌레 뿌리기, 가족이나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반응 관찰하기, 바닥에 가짜 피를 뿌리고 죽은 척 누워 가족 반응 관찰하기 같은 영상들은 조회수 200~300만을 넘겼다. ‘조회수 ○○ 넘으면 원하는 것 다 보여드림’ 식의 불법촬영 게시물도 많다. 

10대들이 만든 콘텐츠에서도 이런 경향이 엿보인다. 심지어 가족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무단 촬영해, ‘여동생 놀리기’ 등 제목을 붙여 유포하기도 한다. 김애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은 “10대 남성들은 자극적·폭력적 행위를 ‘놀이’라며 장려하는 인터넷 방송의 문법에 익숙하다. 똑같이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려 한다. 비판을 받아도 ‘장난인데, 어른들이 만든 콘텐츠가 재미있어서 따라할 뿐인데 왜 호들갑이냐’라고 반응한다”고 했다.

디지털 성폭력은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2014년부터 3년간 성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 상담 747건을 분석해보니, 또래 간 성폭력 가해 유형 중 SNS를 통해 성적인 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게시하는 ‘통신매체 이용 음란’ 유형이 2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치마 속이나 화장실 등을 몰래 촬영하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유형도 전체의 18%나 됐다. 남성들은 10대 때부터 ‘야동’ 등 성적 재현물을 집요하게 찾아 보고 공유하며, 소수자 비하적·폭력적인 ‘남성성’을 학습하고, 폭력적 또래문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김애라,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 김 연구위원은 “10대 남성들은 SNS에 불법촬영 사진을 올리는 일도 오프라인의 성범죄에 비하면 덜 심각한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이 똑같이 당하고서야 그게 심각한 행위임을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디지털 성범죄(몰래 카메라 등)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처벌 강화 △피해자 지원 강화 △온라인상 불법촬영물의 신속한 차단과 유포 방지 △행정기관·공공기관과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 시 카메라 불법촬영과 유포행위의 위험성·처벌 법규 등을 집중 교육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자료를 개발·보급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법촬영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라며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당장 10대들이 체감할 만한 변화는 찾기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이긴 하나, 만 10세 이상부터 만 14세까지의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소년법은 이들이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성폭력 예방교육 수강·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인식의 대전환’ 없이는 디지털 성폭력의 대물림을 끊기 어려워 보인다. 김 연구위원은 “이는 (사법적 문제만이 아니라) 미디어 산업과 교육 행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 방송의 혐오·폭력적 콘텐츠 규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교육과 부모들은 아직 잘 모르고 제대로 다루지도 않는 문제다. 심층 연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결국 성인들의 왜곡된 성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서울 마포구 학부모 모임 ‘MMDC’ 회원 김미령(34) 씨는 “(불법 음란물을 공공연히 찍고 보는) 어른들부터가 문제다. 동의 없는 영상을 찍어 퍼뜨리는 것은 ‘야동’이 아닌 불법이라고 똑똑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조민혜(가명·37) 씨도 “요즘 세대를 위한 윤리 교육과, 이런 콘텐츠가 버젓이 유통되는 일을 막을 규제가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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