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화장실·집에서까지 ‘불법촬영’ 공포, 당신은 겪어보셨습니까?
지하철·화장실·집에서까지 ‘불법촬영’ 공포, 당신은 겪어보셨습니까?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5.21 19:06
  • 수정 2018-05-24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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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6일 오전 대구시 중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계단에 ‘허락 없는 촬영은 범죄입니다’라고 적힌 불법촬영 금지 문구가 지나는 시민의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2월 6일 오전 대구시 중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계단에 ‘허락 없는 촬영은 범죄입니다’라고 적힌 불법촬영 금지 문구가 지나는 시민의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하철 안,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 렌즈, 공중화장실 곳곳에 자리한 수십 개의 구멍들, ‘몰카’ 불안에 여성 1인 가구의 필수 생활용품이 된 암막 커튼…. 여성들이 겪는 불법촬영 공포는 일상을 침투한지 오래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제로 불법촬영 피해를 호소해도 검·경은 가해자 수사와 처벌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와, 수사당국이 불법촬영 범죄 확산에 일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서도 불법촬영 횡행

지난해 1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인천 부평 일대에서 지하철 여성 승객을 불법 촬영하는 남성을 고발하는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친구가 겪은 일을 제보하겠다”며 “친구 앞에 어떤 남자가 서더니 휴대폰이랑 보조배터리를 만지작거렸다더라. 그 남자 가방에는 구멍도 나 있고, 보조배터리와 바지의 앞섶 모양도 이상했고, 친구를 찍는 것 같았다고 했다. 혹시 몰라 친구도 그 남자 사진을 찍고 부평역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친구를 따라 내려 계속 쫓아왔다고 하더라”는 글과 함께 남자의 사진을 ‘부천 할말’ 페이스북 페이지에 제보했다.

 

지난해 1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불법촬영 남성 범죄자의 모습. 셔츠 밑단과 가방에 카메라 렌즈처럼 보이는 동그란 구멍이 나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부천할말’
지난해 1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불법촬영 남성 범죄자의 모습. 셔츠 밑단과 가방에 카메라 렌즈처럼 보이는 동그란 구멍이 나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부천할말’

사진 속 남성의 가방과 셔츠 밑단에는 카메라 렌즈처럼 보이는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실제로 그 남성은 올해 1월 불법촬영 범죄자로 경찰에 붙잡혔다. 부천원미경찰서 여성청소년과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경찰은 지하철 내 CCTV를 통해 남자의 이동경로와 카드사용 내역을 확인한 뒤 범인을 특정했고, 가해자를 주거지에서 긴급체포해 집 안에 있던 휴대폰과 보조배터리 카메라 등을 압수했다.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남자의 전자기기에서는 수백 건의 동영상이 발견됐고, 당시 경찰은 남성을 ‘불구속’ 수사했다.

지하철 내 불법촬영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2016년 서울 시내 지하철역 불법촬영 신고 건수는 587건이었으며, 지난해에는 60여건이 증가해 643건으로 나타났다.

불꽃페미액션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 ‘불법촬영 성차별수사 규탄’ 기자회견에서도 불법촬영 피해당사자의 발언(페이머즈 활동가 대독)이 있었다. 여성 A씨는 지하철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불법촬영 피해를 입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고, 경찰에게 ‘죄송하다. 실수였다.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가해자의 휴대폰에는 피해자의 하반신이 촬영된 사진과 함께 수백 여명이 넘는 여성들의 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에 따르면, 검찰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남성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자도 마음 놓고 용변 보고 살고 싶다”

“‘혹시 몰래카메라가 있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본다.” 화장실 내 몰래카메라(몰카)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다. 카페, 술집, 학교, 학원, 공항, 도서관, 영화관, 백화점 등 장소 불문하고 여자화장실에서는 크고 작은 구멍을 발견할 수 있다. 정체 모를 구멍들로 여성들이 몰카 공포에 시달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텀블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불법음란사이트 등에서는 지하철 역이나 다중이용화장실에서 찍힌 ‘화장실 몰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주국제공항 여자화장실 칸막이 벽에 나 있는 구멍들. 누리꾼들의 ‘몰카 구멍’ 문제제기가 있자, 청주공항 시설관리팀은 조사에 나선 뒤 “칸막이에 존재하는 구멍은 화장지 케이스를 옮기면서 발생한 못 자국으로, 화장실 이용객이 많다 보니 화장지 케이스의 파손율이 높아 이를 교체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SNS 캡처
청주국제공항 여자화장실 칸막이 벽에 나 있는 구멍들. 누리꾼들의 ‘몰카 구멍’ 문제제기가 있자, 청주공항 시설관리팀은 조사에 나선 뒤 “칸막이에 존재하는 구멍은 화장지 케이스를 옮기면서 발생한 못 자국으로, 화장실 이용객이 많다 보니 화장지 케이스의 파손율이 높아 이를 교체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SNS 캡처

송곳, 실리콘, 접착제, 퍼티(빠데). 최근 여성들이 공중화장실 몰카에 대비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도구다. 구멍마다 자리하고 있을지 모를 몰카 렌즈를 송곳으로 깨고, 그 자리를 실리콘이나 접착제, 퍼티 등으로 메운다. 임시 방편으로 구멍 난 자리를 휴지로 막아놓은 것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 지난 2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는 화장실 몰카에 대비하기 위한 ‘몰카 금지 응급 키트’까지 등장했다. 키트는 몰카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스티커와 실리콘, 송곳, 마스크 등으로 구성됐다. 펀딩을 계획한 ‘화장실수호대’(닉네임)는 “화장실 불법촬영을 경험하고 큰 분노와 두려움을 느꼈다”며 “불법촬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었고 많은 여성분들이 불법촬영에 대한 위험성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펀딩을 진행하게 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여자도 마음 놓고 용변 보고 살고 싶다. 남자에겐 당연한 것 여자들은 갈망한다. 여자도 마음 놓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여성들이 외친 구호다. 20대 여성 문모 씨는 “여학생들이 대학 내 동아리나 소모임에서 스티커를 공동구매하거나 실리콘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자체적으로 몰카를 예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객실 천장 화재감식기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뉴시스·여성신문
객실 천장 화재감식기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들은 집에서도 불법촬영 불안 겪어

혼자 사는 여성에게 암막 커튼은 필수 생활용품이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실루엣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천으로 된 커튼보다는 암막 커튼을 사용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김미송(22)씨는 “여성 자취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새로 이사 가는 집에는 몰래카메라가 설치돼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전구, 나사, 전등 스위치까지 챙겨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씨는 “‘이런 것까지 조심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매일 일상을 보내는 집이 누군가에게 노출돼있을 수 있다는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에는 여성이 사는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남성 소방공무원이 검거되기도 했다. 가해자 김모(당시 40세)씨는 자신이 소유한 원룸 건물의 빈집에 침입해 거실에 설치된 스탠드형 에어컨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하지만 법원이 김씨에게 내린 처벌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에 그쳤다. 지난 2012년에도 30대 남성 A(34)씨가 직장 여성 동료가 사는 아파트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2015년에는 20대 남성 노모(당시 29세)씨가 여성 직장 동료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하고 스토킹을 하다 집에 침입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불법촬영 범죄 날로 심각해지지만…구속·처벌 ↓

불법촬영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검경이 불법촬영 범죄 수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범죄자를 구속기소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데 그쳤다는 비판이 높다.

지난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2~2016년)간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인원은 1만6201명이었으며, 그중 남성은 98%에 달하는 1만5662명이었다. 반면 불법촬영 피해자 2만6654명 중 여성은 2만2402명으로 84%에 달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 21일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불법촬영으로 검거된 인원은 1만9600여명이며, 이중 남성이 절대다수인 97.5%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중 구속된 인원은 493명(남성 490명, 여성 3명)에 그친다.

이 청장에 따르면, 불법촬영 범죄자 검거율은 96%다. 하지만 검거율이 높다고 해서 범죄자 구속률이나 처벌 수위가 높은 것은 아니다. 경찰청 성폭력대책과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5월 13일까지 붙잡힌 불법촬영 피의자 1288명 중 남성은 1231명이었으며, 이중 구속된 인원은 34명뿐이다. 또 지난해 불법촬영 피의자 5437명 중 남성은 5271명으로 피의자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이중 구속된 이는 119명에 불과했다. 2016년에도 불법촬영 피의자 4491명 중 남성은 4374명이었지만, 구속된 이는 135명에 그쳤다.

불법촬영 범죄자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17일 공개한 ‘2017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 발생 건수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검찰의 기소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2010년에 접수된 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기소된 불법촬영 범죄 건수 666건 중 484건이 기소돼 기소율이 72.6%였으나, 2016년에는 접수 범죄 건수 5852건 중 1846건만 기소돼 기소율이 31.5%로 나타났다. 6년간 불법촬영 범죄 기소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불법촬영 범죄자에 대한 처벌도 약하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1심 양형을 살펴보면 벌금형은 72%, 집행유예는 15%, 선고유예는 7.5%, 징역형은 5.3%에 불과했다. 벌금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만원 26.6%, 300만원 22%, 100만원 15.1%, 150만원 12.5% 순으로 나타났다. 300만원 이하 벌금형이 80%에 달했다.(한국여성변호사회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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